
계절산문 [식단표]를 들어가며 날짜는 몸으로 겪고 계절은 마음으로 통과하는 중입니다. 그런 이유로, 새해와 입춘 중 어느 쪽을 시작이라 부르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불 꺼진 거실에 앉아 지난날을 펼쳐봅니다. 쉼 없이 내리던 봄비도 조금씩 잦아들고 있습니다. 용액을… 더 보기

지난 3월, 무척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단일체의 형상을 보았다. 그 미지의 형상은 수탉의 머리, 공작의 목, 인도혹소의 혹, 사자의 허리, 뱀의 꼬리, 코끼리 다리, 사슴 다리, 호랑이 다리, 연꽃을 쥔 사람의 손을 하고 있었다.… 더 보기

먼 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곳의 먼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서 있다. 그런 착각으로부터 나는 며칠간의 체류를 위한 짐을 싸고, 그곳에서 가야 하는 장소들을 찾아보고, 꼭 먹어야 하는 음식 리스트를 정리해 본다. 물론 막상 도착해서는… 더 보기

그는 내 안에 갇혔다 그리고 슬픔은 그의 안에 갇혔다 그는 예전과 달리 여유가 조금 생겼다, 공원의 좁은 나뭇잎들 아래로 천천히 걷다가 사다리로 올라가 하늘을 뜯어버렸다, 구멍을 막아놓은 판자처럼 빗방울 혹은 별과 검은 빛이 쏟아질 테고… 더 보기

벽면에 무언갈 붙이는 걸 좋아한다. 가장 만만한 곳이 냉장고이다. 우리집 냉장고 문짝엔 온갖 것들이 붙어있다. 여행갔을 때 사온 기념품, 가족 사진, 남편이 출장가서 보내준 편지 등. 내 책상 앞 벽, 책상 옆 책장벽도 마찬가지다. 책에서… 더 보기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온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더 보기

[발톱 세우기]를 여는 말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그랬다. 고양이는 너무 행복하면 자기도 모르게 발톱을 세운대. 그날 이후로 나는 가끔 손가락 끝에 힘을 주었다. 그러면 손톱 끝에서부터 무언가가 자라 나와서 온 세상을 할퀸다. 숨기려고… 더 보기

아주 가끔은사과나무 아래 서 있고 싶다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이두 팔 벌리고 서 있는사과나무밭태양이 눈부신 날이어도 좋고눈 내리는 그 저녁이어도 좋으리아주 가끔은 그렇게사과나무 아래 서 있고 싶다내가 아직 어린 소년이어도 좋고사과나무처럼 늙은 뒤라도 좋으리가끔은 그렇게사과나무 아래… 더 보기

2025년 가을에 첫 개인전 <흑백, 해몽>을 체리암에서 열었던 홍혜정 작가와의 대화 문학소녀로 자란 소설가 지망생이던 홍혜정은 평소에 낙서를 즐겼다. 그래서 낙성대쪽 단골 음악 펍인 사운드마인드에서 음악신청지에 낙서를 하곤 했다. 특히 문예지에 단편소설 투고한 뒤 낙담한… 더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