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재즈 피아노이다. 첫 시간에 선생님은 자신이 연주하고 싶은 곡의 악보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는 Autumn Leaves를 택했다. 그나마 쉬워 보이는 악보를 찾았지만, 그렇다 해도 악보도 제대로 볼 줄 모르고 악보를 건반 위로 옮겨 치는 건 더더욱 서툴렀던 나에겐 절대 쉬울 리 없었다. 나의 뇌와 손은 굳어버린 것인가 하는 마음이 몇 달간 지속됐다. 별 수 없이 할 수 있는 것을 반복하고 안되는 부분은 가능하도록 조절하며 6개월이 흘러갔다. 그 사이에 내 악보가 탄생했다. 초보자용으로 판매되는 악보에서 치기 어려운 화음을 제거한 수준이긴 하지만 말이다.

Autumn Leaves는 대표적인 재즈 스탠다드 곡 중 하나이다. 재즈 스탠다드는 장기간에 걸친 실험을 통과해 재즈 연주자들의 연주목록에 영구적으로 자리매김한 곡목i들로서, 재즈 연주자들은 이 곡들을 재해석해서 편곡하거나 즉흥으로 연주한다. 재즈 악보를 보면 오선의 보표 상단에 코드가 적혀 있는데 이 코드가 편곡, 즉흥 연주의 기반이 된다. 이에 재즈 스탠다드 곡에는 무수한 버전이 존재한다. 음악의 실현을 위한 가이드이자 법칙으로서 절대적일 것 같았던 악보에서 발현되는 예측 불가능성이라니, 이 다양성은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악보는 흥미롭게도 유전자와 닮았다.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坂本龍一)와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福岡伸一)는 그 둘 사이의 대응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악보가 음표 혹은 코드로 채워지듯 유전자에도 마치 음표처럼 몇 개의 염기 서열이 적혀 있다고 보자는 것이다. 악보는 누군가에 의해 연주되거나 청중이 그것을 듣기 전까지 음악으로 실재한다고 보기 어려우며,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다른 음악이 나온다. 유전자도 마찬가지이다. 일란성 쌍둥이의 예처럼 완벽히 일치하는 유전자도 어떻게 ‘연주’되느냐는 유전자를 가진 세포나 개체에 달려있다.ii 무언가 현실에 존재하는 것과 그것이 발현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이다.
악보라는 존재와 그 발현 사이에 생명현상, 즉 인체의 작용이 들어가는 일은 왠지 반갑다. 소위 말하는 ‘인간의 개입’ 치고는 무해한 데다가 꽤 아름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일까? 악보가 인체에 의해 발현되어 음악이 되었을 때 그것을 듣고 즐거워해주는 이들이 있는 것은 더 의미있다. 이번 달 초에 우리 피아노 선생님은 학생들을 위한 작은 연주회를 열어 주셨다. 나를 포함한 4명의 연주자가 서로의 가족, 친구, 연인 앞에서 그동안 연습한 곡을 자기 방식대로 연주했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에서와는 조금 다른 새로운 공기의 진동(피아노 연주 소리)을 만들어내며 한번 지나면 돌아오지 못할 시간을 꾸렸다. 친밀한 관객들은 연주자의 노력, 감정, 해석이 들어간 음악을 함께 느끼고 그 시간을 즐겨주었다. 참으로 따뜻한 시간이었다.

후쿠오카 신이치는 음악의 탄생에 대한 가설 하나를 제시했다. 생명체 당사자인 사람은 자연물의 일부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산다. 이를 위해 사람은 외부에 음악을 만들어 내부의 생명과 공진할 수 있도록, 자연물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장치로서 음악을 탄생시킨 것이다.iii 나는 그의 가설이 마음이 든다. 해서 앞으로는 음악을 들을 땐 그런 마음가짐을 가끔 떠올리려 한다. 내가 자연물의 일부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i 남정우, <재즈 스탠다드(jazz standard) 개념의 기원과 미학적 원리: 미적 범주들의 포괄적 정의를 위한 시론>, 이화음악논집, 26(4), 2022, pp.89-124.
ii 류이치 사카모토, 후쿠오카 신이치, <음악과 생명>, 은행나무 pp.175-179
iii 위 책 p.97
- 글과 사진 박지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