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좋은 생각 품고
머물다가 
떠나가는 곳

용기


  • 지난 3월, 무척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단일체의 형상을 보았다. 그 미지의 형상은 수탉의 머리, 공작의 목, 인도혹소의 혹, 사자의 허리, 뱀의 꼬리, 코끼리 다리, 사슴 다리, 호랑이 다리, 연꽃을 쥔 사람의 손을 하고 있었다. 그 정체는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나바군자라 Navagunjara라는 전설의 동물이었다. 인도 뉴델리에 위치한 국립공예박물관의 <엮음과 짜임 Entangled and Woven> 전시에서 보았는데, 더 보기

  • 벽의 소리들

    벽면에 무언갈 붙이는 걸 좋아한다. 가장 만만한 곳이 냉장고이다. 우리집 냉장고 문짝엔 온갖 것들이 붙어있다. 여행갔을 때 사온 기념품, 가족 사진, 남편이 출장가서 보내준 편지 등. 내 책상 앞 벽, 책상 옆 책장벽도 마찬가지다. 책에서 본 문구들, 인상깊었던 이미지들이 그 공간을 차지한다. 개인적으로 벽에 붙이는 것들은 자꾸 보며 익히고 싶거나,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들이 더 보기

  • 나의 파랑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장 매력을 느끼는 색은 파란색이라고 한다. 한 여론조사에서 4대륙, 10개국 사람들에게 제일 좋아하는 색을 물어봤는데 10개국 모두에서 인종, 성별, 나이와 상관없이 파란색을 꼽았다. 동물행동학자인 Ashley Ward는 파란색이 사람들을 차분하게 진정시킨다고 말하며 이 색을 맑은 하늘, 강, 호수, 바다와 같은 자연, 순수함이라는 특성과 연관 지어 생각했다.₁ 나도 파랑을 좋아한다. 내가 손에 꼽을 만큼 좋아하는 더 보기

  • 올 여름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재즈 피아노이다. 첫 시간에 선생님은 자신이 연주하고 싶은 곡의 악보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는 Autumn Leaves를 택했다. 그나마 쉬워 보이는 악보를 찾았지만, 그렇다 해도 악보도 제대로 볼 줄 모르고 악보를 건반 위로 옮겨 치는 건 더더욱 서툴렀던 나에겐 절대 쉬울 리 없었다. 나의 뇌와 손은 굳어버린 것인가 하는 마음이 몇 달간 더 보기

  • 12월의 앞사람

    구두를 신고 걸어가는 앞사람을 본다. 천사 같다는 생각왜 들었을까. 무슨 일 있어? 전화 너머로 네가 물어오는데 대답할 수가 없다. 이유 없이 내 앞사람이 천사 같다는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보세요? 그렇게 되묻는 네 목소리가 아무리 따뜻하다 해도 빙판길 때문에 앞사람이 넘어지진 않을까 걱정이다. 훤히 드러난 발목이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그럼에도 물 흐르듯 움직이는 수많은 더 보기

  • 모든 이들은 하나의 풍요로운 세계를 품고 있다고 믿는다. 그 세계는 그 사람이 경험한 모든 순간과 엮여 있을 테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지 하는매 순간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을 어떻게 사는지 결정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순간이 다음의 시간들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 결정 기준엔 여러가지 키워드들이 있다. 사랑, 우정, 더 보기

  • 실제로 찾아올 먼 미래인지, 단지 환상에 불과한지 구분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있다.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내겐 그랬다. 이 영화의 원작인 만화 작품에 따르면,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은 고도로 발달한 기계문명이 ‘불의 7일간’이라 불리는 대전쟁으로 망한 지 1000여 년이 지난 시점이다. 영화는 한 소녀가 썩은 바다(부해)라 불리는 숲을 정찰하며 시작된다. 이 숲은 균들이 독을 품은 포자를 뿜어대어 더 보기

  • 2018년, 군산에서 <안녕하제>란 전시를 한 적이 있다. 하제라는 마을에 관한 전시였다. 군산 미군기지 바로 옆에 위치한 그 마을은 원래 섬이었다. 그러다 일제에 의한 간척사업으로 육지와 연결된 항구마을이 되었다. 이후 새만금 방조제가 만들어지며 바다가 막히긴 전까지 하제마을의 포구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다. 그러나 마을과 가까운 곳에 미군기지의 탄약고가 지어졌고, 탄약고가 위험하므로 더 보기

  • 신비로운 안개의 함정

    잠깐 안동에 산 적이 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안동댐 하류 인근으로, 독립운동가 이상룡의 생가인 임청각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안동에 내려가기 전부터 낙동강과 주변 산세에 반해 있던 나는 매일 아침 산책에 나섰다. 임청각에서 시작해서 낙동강 변을 따라 안동댐을 지나서 쭉 올라가 월영교까지 가서 강을 건넌 후 숲을 왼쪽에 두고 다시 강변을 따라 쭉 내려와 안동댐을 지나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