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좋은 생각 품고
머물다가 
떠나가는 곳
  • 캐서린 레이븐의 <여우와 나>를 읽고

자연을 은둔처로 바라보는 시선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조선 시대 문인화만 보아도 속세를 떠나 자연으로 들어가 학문과 덕을 닦으며 살아가는 은사(隱士)가 종종 등장한다. 사람들은 이들이 세상사에 소극적으로 임한 현실도피자라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자연에 귀의해 은일 사상을 추구하는 은둔자들을 우러러보기도 했다.

한편, 어떤 이는 자연으로 도피했다가 그곳이 진정한 고향임을 깨닫게 되어 그때 얻은 힘을 주춧돌 삼아 다시 사회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기도 한다. 캐서린 레이븐(Catherine Raven)이 그런 사람이다. 그녀에게 사회와 야생자연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다. 그녀는 사회에서 얻지 못한 것을 자연과 야생에서 배우고 그 배움을 사회에 전했다.

캐서린은 가장 가까운 도시와의 거리가 100km 정도 되는 외딴 계곡에서 약 3km를 더 올라가야 나오는 미개간지를 매입했다. 추운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고 강수량도 낮은 사막 같은 곳이었다. 그녀는 도시에서 인간적 삶을 찾을 수는 없다고 한 생텍쥐페리의 말에 크게 공감한 것 같다. 캐서린은 작은 오두막에서 차 한 대에 실을 수 있을 만큼의 짐만 가지고 생활하며 자신의 땅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생물을 관찰하며 지냈다.

자연은 캐서린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무지개를 보며 모든 생명엔 수명과 무관한 본질적 가치가 있음을 깨달았고, 같은 공동체에 속한 동료 여우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까치를 보며 희생과 우정을 배웠다. 분홍색, 흰색, 검은색이 섞인 바위의 광물질을 통해 그 바위가 30억 년 이상 이 지구에 존재해 왔다는 것을 깨닫고 지구는 처음부터 아름다웠으리라 짐작하기도 한다. 깊은 우정을 나눈 여우는 그녀에게 특히 더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여우와 나>는 그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한 벙어리 여우와 캐서린의 관계가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놀랍게도 여우는 캐서린과 생명 대 생명으로 연결되길 원했다. 생물학도인 그녀는 처음엔 여우와의 우정을 부정했지만, 여우가 열어준 야생의 세계를 경험하며 그녀는 변한다. 그녀가 갖고 있던 과학적 통념에 새로운 스펙트럼이 더해졌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변했다.

캐서린은 여우가 만들어가는 수월한 삶에 경탄했다. 여우는 평온하고 화창한 날을 허비하는 법이 없었으며, 목숨을 부지할 만큼만의 규칙을 지키며 살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튼튼함과 원기를 만끽했다. 여우는 홀로인 것보다 연결과 관심을 원했으므로 달빛 아래를 걸을 때, 좋아하는 바위에서 일광욕할 때 곁에 둘 친구를 만들었고 그들을 곁에 두었다. 또한 여우는 캐서린이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정창윤 작가의 자수 작업

맑은 하늘에 보름달이 뜬 어느 날 밤, 여우는 자신의 새끼들을 데리고 캐서린에게 왔다. 달빛 아래에서 네마리 작은 여우가 깡총거리며 자유분방한 공연을 펼친 그 밤은 캐서린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녀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고, 압도적으로 행복했다. 캐서린은 여우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것이 자기 삶의 목적임을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은 여우가 그녀에게 보여준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실온에서는 증발하여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고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지는” 수은처럼 되고 싶었던 캐서린은 더 이상 사라지길 원하지 않는다. 이제 그녀는 지구 생명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타고난 자신의 권리를 인지하며 그 특권을 맘껏 누림과 동시에 그에 따른 책임감을 갖고 살아간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그녀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캐서린 레이븐이 자신의 저서 <여우와 나>를 통해 보여준 그 편안함은 자연을 도피처가 아닌 진정한 고향으로 느끼는 존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자연과의 연결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는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가치이다.

  • [자연 한 조각] 글 박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