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좋은 생각 품고
머물다가 
떠나가는 곳

나눔


  • 1 안녕하세요. 어느새 겨울을 맞이하고 있어요. 나를 내보이고 싶던 날과 나를 내던지고 싶던 날사이에서 비가 오듯 이파리는 떨어지고 사람들이 마른 낙엽을 즈려밟고 지나가네요. 바삭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바삭하면 바삭할수록 즐거워하면서, 멀어져갔어요. 멀어져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삐거덕거리는 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이맘때쯤 거리의 바닥이 내게 들려주는 소리들은 모두 외로움과 쓸쓸함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내가 이 거리를 너무 더 보기

  • 친구 – 해열과 진열

    부쩍, 그리고 무척이나 추워졌네. 집으로 가는 길이 유난히 멀다. 잠실대교 밑으로 넓게 뻗은 한강을 지나, 최고속도를 60에서 70으로 상향한 안내판을 지나, 나 역시 조금 더 달려보자는 다짐을 지나, 서울에서 경기로 넘어가는 알 수 없는 지점을 지나, 비슷한 느낌으로 한 시절을 지나온 내 얼굴이 창가에 어린다. 지금 눈을 감으면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더 보기

  • 팬을 강조해서 ‘빠’라고 부르듯, 이건 아빠에게 전하는 팬레터 § 오랜만에 김명기 시인의 ‘목수’라는 시를 읽어 본다. 첫 대가리만 때려 보면 단박에 들어갈 놈인지, 굽어져 뽑혀 나올 놈인지 안다는 화자의 말이 여전히 굳건하다. 그 단언이 가슴 깊숙이 박혔던 2022년 봄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 시를 읽고 처음으로 아빠에 관한 시와 소설을 썼던 기억 역시 선연하다. 아빠도 더 보기

  • 1 어느 겨울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호수 공원으로 향했어. 물안개를 보고 싶어서. 보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못 볼 게 없다고 생각했어. 이곳에서 저곳까지의 거리는 아무리 멀어도 결국 움직임의 문제니까. 몸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지만, 몸이 없어도 마음이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목도리를 하고, 롱패딩을 입고, 핫팩을 두어 개 챙겨서 도착한 호수 더 보기

  • 타인 – 사랑채 만들기

    1 마음을 한옥의 구조로 만들고 있는 요즘이다. 갈비뼈처럼 뻗은 서까래와 숲에서 얻은 것들로 덧바른 슬픔의 벽체. 다 좋지만 이 모든 작업은 사랑채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원룸이었던 시절, 타인을 생활에 끌어들이는 일은 내 초라함을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사랑채의 사랑(舍廊)은 집과 마루를 의미할 뿐이지만 한 사람의 마음에 [잘 머물다 가요] 하고 더 보기

  • 버드나무가 여름 햇빛으로 자신의 초록을 세상에 꺼내두는 사이 나도 장롱에서 여름옷을 꺼냈습니다. 반팔 몇 개를 몸에 대어 보며 올여름의 나는 작년 여름보다 팔이 조금 길어졌을까, 하는 사이에는 바다에 두 번 다녀왔습니다. 한 번의 바다에서는 지난 시간의 나를 후회했고 다른 한 번의 바다에서는 돌아갈 용기를 가진 사람이 후회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더 보기

  • 시작입니다. 시작은 매번 설렘과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광주에서 나고 자라 20년을 살다가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천안에 처음 올라왔을 때처럼, 텅 빈 방에서 나라는 사람의 허공을 처음 감지했을 때처럼, 사랑은 사람을 살리는 것만이 아니라 죽일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처럼, 얼굴 한 번 본 일이 없는 사람이 내가 쓰는 시가 좋다며 웃으며 말을 걸어올 때처럼. 내게 시작은 더 보기

  • 여러 책을 쓰고 그림도 잘 그리는 김산하 작가(생명다양성재단의 대표)에게 그가 살아온 궤적이 궁금하다고 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하는 그림 궤적도 함께 남겨주었다. 어린이들도 참가한 이번 행사(2025.4.13)에, 그들에게 어려운 말인 ‘궤적’을 쉽게 보여주기 위해 종이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부터 그렸다. 그리고 작가가 자신이 아기일 때 침대에 누워있다가 중간에 언제 몸을 일으켰는지 모르게 갑자기 우뚝 서있었다는(중간 궤적이 생략된 아기!) 더 보기

  • 요리사 신소영

    안녕하세요. 2024년 11월 <작가와의 사적인 모임>으로 함께 한 <나를 만드는 바스크 요리> 책과 마하키친 대표로서 사는 인생 이야기 듣는 시간이 저희에게 좋은 추억거리가 되어 종종 그날의 따스함에 대해 얘기하곤 합니다.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공들여 만들어주신 ‘봉금의 뜰’ 비건 도시락을 다 함께 즐기며 한 입, 한 입 감사하는 마음을 나눴지요. 모임에 오신 분들이 유난히 마음이 더 보기

  • 김산하의 궤적

    <까치에서 긴팔원숭이 그리고 야생으로>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는 많다. 그러나 보통 잠시이다. 부모님 손 잡고 동물원, 박물관, 체험관을 한동안 다녔더라도 곧 졸업해야 하는 무엇이다. 나는 아니었다. 내가 한 것이라곤 사실 아무것도 안 한 것이었다. 즉, 졸업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동물을 그저 좋아하는 것에 머물 순 없었다. 주변에서 관찰하고 즐기다, 곧 학문적으로 공부를 했고, 더 나아가 먼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