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산문 [관계대명사의 일기]는 타인, 가족, 친구, 연인 총 4부작으로 연재할 계획이었다. 관계라는 게 하여간 그러니까. 쪼개려면 한없이 쪼갤 수 있지만, 덩어리로 두자면 저 네 가지 범주를 벗어나긴 어려우니까. 다음은 순서인데, 당초 염두했던 흐름은 가족 -> 친구 -> 연인 -> 타인이었다. 필연의 관계를 우연의 관계로 되돌려놓고 싶었다. 어떤 확실함으로부터 물러선 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
연인 산문을 제때 완성하지 못했으므로, 이 계획은 실패했다! 지난 연인을 가타부타하는 건 경우가 아니고, 없는 연인에 관해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시간만 데구르르 굴러간 것이다. 정말이지 데구르르……

불쏘시개처럼 마른 손가락으로 타닥타닥…… 연인을 검색한다. 모두가 아는 의미로부터 물러서자 ‘어떠한 일에 관계있는 것을 쭉 끌어댐’이라는 뜻이 보인다. 연인連引과 견인牽引이 같은 악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그래서 알게 된다. 더 이상 구를 수 없는 차체를 견인하듯, 동력이 다한 슬픔을 연인하던 내 모습이 얼핏 떠오른다. 문득 슬프지만…… 그만 슬프자. 그만 슬퍼하고 새로운 슬픔을 끓이자.
당기는 힘을 연인이라 부른다면, 미는 힘을 인연이라 말해도 될까. 미는 힘으로 눈사람이 만들어지듯, 내년엔 인연들과 함께 무언가를 완성시키고 싶네. 그러기 위해 나를 먼저 수리하는 겨울이다. 후사경에 비친 외로움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지.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처럼 사랑의 의성어를 덜컹!이라고 외쳐야지. 이따금 길을 잃어 우왕좌왕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처럼 새로운 뜻을 찾으면 되겠지.
우왕좌왕 : 오른쪽으로 우왕 왼쪽으로 우왕하다가 나아가는 방향을 종잡지 못함
삶의 더딘 구간을 지날 때 우왕좌왕 마인드로 극복해 보기로 한다. 삶에 당하는 것이 아닌, 그저 풍경을 구경하기 위해 속도를 낮췄을 뿐이라고. 그러다 나와 비슷한 속력을 지닌 타인과 마주치는 미래. 그 사람과 연인되어 사랑채로 돌아가는 미래.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연인에서 가족 혹은 연인에서 친구가 되는 미래.
어쩌면 이미 겪었던 미래.
그래도 믿어봐야겠지.
이 산문이 나를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옮겨줄 견인차가 될 것이라고.
- 글과 사진 윤병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