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나는 정지의 미에 너무나 등한하였다나무여 영혼이여가벼운 참새같이 나는 잠시 너의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성장(成長)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들이 하여온 일정리(整理)는 전란에 시달린 20세기 시인들이 하여놓은 일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영혼은그리고 교훈은 명령은나는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이지만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더 보기
구두를 신고 걸어가는 앞사람을 본다. 천사 같다는 생각왜 들었을까. 무슨 일 있어? 전화 너머로 네가 물어오는데 대답할 수가 없다. 이유 없이 내 앞사람이 천사 같다는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보세요? 그렇게 되묻는 네 목소리가 아무리 따뜻하다 해도 빙판길 때문에 앞사람이 넘어지진 않을까 걱정이다. 훤히 드러난 발목이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그럼에도 물 흐르듯 움직이는 수많은 더 보기
어른이 되면 멋진 연애를 하고 싶었어. 배낭을 메고 떠난 유적지에서 우연히 입을 맞추거나, 흔들리는 케이블카에 단둘이 갇혀 두근대며 잠시 손을 잡는 두사람…… 같은(아무튼, 안경을 벗고 펑! 미인으로 변했다는 설정) 어른이 되면 암이 생길 줄 몰랐어. 종양이 생긴 갑상샘 반쪽을 자르게 될 줄도, 쇄골 위에 툭 튀어나온 흉터가 빨갛게 자리잡을 줄도. 30대에 연애를 하게 될 줄 더 보기
성공을 한 사람을 찾으려면 그건 아마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일 거야. 내가 쌓은 모래성을 호시탐탐 노리는 파도가 얼마나 높은데. 그저께는 오묘의 모래성이 무너졌고, 어제는 오묘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오묘는 억울하다고 했다. 모래성이 몽땅 무너진 것도 아닌데……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내 작은 모래 무덤을 보면서. 오묘는 떠나기 전에 내게 말했다. 바닷속은 컴컴하고 차가워. 그래도 계속 가다 보면 감각이 무뎌지는 더 보기
이렇게 배고픈 밤엔 미역국을 끓여요 혼자 먹기 아까우니 친구를 불러요 친구가 올 때까지 무얼 할까요? 제 경우엔 ― 친구를 기다려요 차가 막힐 거예요 마음에 드는 옷 없을 거예요 더운 물이 나오지 않을 거예요 몰라요 배가 너무 고파서 과자를 뜯었어요 봉지 안의 별조각들을 쓸어 삼켰어요 제가, 허풍이 좀 있어요 국 끓는 소리에 잠이 솔솔 오는데 와서 더 보기
오래된 식당에서 나왔을 땐 일곱 시 정도 몇 분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다만 개망초 흰 꽃잎이 난분분한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면 대충 반으로 나눠 먹던 호빵처럼 두 쪽으로 찢어진 구름 사이에 어둠이 들어차는 중이고 나는 알게 모르게좋아지는 중이야 여름 하늘에서 가뿐히 호빵을 발견하듯네가 숨겨둔 슬픔도 알아챘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종로는 여전히 골목이 많네 내가 가진 골목과 네가 가진 더 보기
녹음 아래로 작은 빛이 발등에 내려앉는다주머니 안에 나 모르게 들어있던 손톱만 한 흰 종이학의 모양으로 첫 도둑질중학생 때 좋아하던 애의 교복 마이 단추,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딱 하나,그 남자애는 우리가 살아보지도 못한 시대의 노래를 허밍으로 부르곤 했지 걔에게 선율을 옮겼을 사람은 누구일까? 자주 그 어깨와 옆태를 그려봤지아주 오래전, 키가 걔만 할 때 그 노래를 더 보기
봄어깨에 두른 외투를 떨어뜨린 사람 여름민소매 원피스를 고르는 사람 그날 다 봤다 고가 아래두껍게 껴입고 사는길사람 기지개 켜고아침에 몇 번솜주먹으로 내리치다 만 겨드랑이 생각이 났다 너와 나의 림프절우리들의 대관절 길길이 길이길이날뛰며 꺼지는 법 없이 오늘도 사람 많은 길을 걸었다 유럽 같아?CD 있어요?신이 한국인이야? 사진 찍어주던 사람에게멀리 농성 소리가까이 연주 마친 사람에게 그렇다고 믿고 있을 사람에게 더 보기
오월이면 초록은 여름이 오는 길을 닦고 바람을 따라 흔들린다 주저 없이 새들은 봄을 내려놓고 밤 없는 여름을 향해 날아간다 돌아올 거야 마른 초록과 깃털로 만든 둥지어린새도 함께 돌아올 거야내가 좋아하는 너의 믿음 그 믿음에 발을 담그고어린새의 날개깃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코우- 리, 코우- 리흉내 내 보다가 새의 소리도 나의 소리도 너의 소리도 아닌 소리가희미하게 자라난다 비가 더 보기
아이가 강을 건넌다 이쪽에서 비 오고 저쪽에서 구름 걷힌다 빗방울 두꺼워 맞은 뺨 퉁퉁 붓는다 달리기에서부터 흐르기까지 봄 지나 봄 또는 철교 아이가 강을 한 번 더 건넌다 이쪽에서 차 굴러가고 저쪽에서 버스 쓸려 온다 바람 가늘어 맞은 뺨 펄펄 뛴다 흐르기 지나 떠가기까지봄 너머 봄또는 천둥 나는 아이의 자전거를 빼앗아강의 다리 밑으로 힘껏 밀쳤다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