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 아래로 작은 빛이 발등에 내려앉는다
주머니 안에 나 모르게 들어있던 손톱만 한 흰 종이학의 모양으로
첫 도둑질
중학생 때 좋아하던 애의 교복 마이 단추,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딱 하나,
그 남자애는 우리가 살아보지도 못한 시대의 노래를 허밍으로 부르곤 했지
걔에게 선율을 옮겼을 사람은 누구일까? 자주 그 어깨와 옆태를 그려봤지
아주 오래전, 키가 걔만 할 때 그 노래를 흥얼거렸을 그의 아버지
혹은 삼촌
연필을 쥐고 뭔가를 받아적을 때 비뚜름하게 돌아가던 고개
방학이 싫어질 때도 있었지만
여름이면 우리는 물가에 있었고
벤치를 차지한 연인들의 관객이 되어
잠든 풍경의 문을 닫고 도망쳤지
우리가 섞일 수 없는 시간으로부터 멀리, 더 멀리, 마치 오래 달리는 연습을 하는 애들처럼
나는 내가 손에 쥔 이 단추가 사실은
우주의 수챗구멍이라는 걸 깨달았지
무참한 외로움, 정지된 사물의 형태, 오래된 노랫말, 시간의 손길이 닿은 것들의
어린 시절, 지구 반대편에서부터 이곳을 향해 기약 없이 걸어온 귀신.
한꺼번에 단추 한 알의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고
전철이 다리 위를 건너고
감빛 물결은 바람의 방향대로 흐르고
연인들은 애인의 손을 잡고 왔던 길로 돌아가겠지
어제와 똑같은 부피로
오후를 나눠 가지고
우리는 꿈꾸고 일어난 사람처럼
마치
그게 없었던 일인 것처럼
숨을 편안히 쉬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거짓말을 할 때면 딸꾹질이 나와서
날숨은 완결하지 못했지
그늘이 지고 서늘한 바람이 축축한 등을 식혀줄 때
버드나무의 이파리가 누군가의 머리카락처럼 느리고 촘촘하게 흔들렸고
소년은 그걸 바라볼 때마다
누군가의 샴푸 향기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지
- 시인 김서치
호수의 끄트머리에 오래 자릴 지켜온 커다란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다. 무더위가 안쪽으로 밀려드는 날엔, 바람에 나부끼는 버드나무의 이파리를 바라보았다. 저들끼리 부딪힐 때면 저르렁하며 웃음소리를 낸다. 기억하지 못하는 첫사랑이 내게도 있는 것만 같고, 뜨겁고 열렬한 향기가 기억날 것 같을 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