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을 한 사람을 찾으려면 그건 아마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일 거야. 내가 쌓은 모래성을 호시탐탐 노리는 파도가 얼마나 높은데. 그저께는 오묘의 모래성이 무너졌고, 어제는 오묘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오묘는 억울하다고 했다.
모래성이 몽땅 무너진 것도 아닌데……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내 작은 모래 무덤을 보면서.
오묘는 떠나기 전에 내게 말했다.
바닷속은 컴컴하고 차가워. 그래도 계속 가다 보면 감각이 무뎌지는 공간이 있는데, 거기가 바로 꿈의 경계선이야.
거기선 매 순간 꿈꾸며 살 수 있다고 했다. 오묘가 떠난 이후로 나는 매일 밤 오묘를 만난다. 컴컴한 적막이 오묘의 얼굴을 가린다.
오묘가 어렴풋이 들리고 흐릿하게 보인다.
오묘가 사라진 후의 모래성은 얕은 물살에도 야금야금 사라져갔다. 나는 새로운 모래성을 바다와 가까운 곳에 쌓았다. 모래성이 무너질 때면 마른세수를 한다. 건조하게 얼굴을 씻어내면 표정이 사라진다. (바다에서 표정은 기억을 의미한다) 나는 콧등에 송골송골한 땀도 목덜미에서 미끄러지는 땀도 모두 닦지 않을 테니까.
오묘를 떠올리며 모래성을 쌓았던 밤, 두 손에서 진땀이 삐죽 새어 나왔다. 미끄러운 손가락 사이로 오늘의 잠이 빠져나간 탓인지, 얇은 눈꺼풀을 덮고
나는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 시인 이은주
세상은 오묘하고, 때때로 미묘하기까지 하다. 웃고 있지만 울고 있어야 하고, 울고 있지만 웃고 있어야 할 순간들이 있다. 반드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나의 표정과 얼굴인데도 내것이 되지 못한 순간이 길어지면 과연 진짜 내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세상은 사람을 쪼그라트려 삶을 살게 하는 듯하다. 그런 세상이 사람에게 자신이 밉냐고 묻는다면, 세상에게 정확하게 시시비비를 가려보자고 하고 싶다. 세상이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 거 아니니? 애초에 나쁘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냐고 말하려다가 아닌가 싶어서 멈칫.
사람은 세상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겠지. 그렇게 살겠지. 평생.
세상을 살아가는 세상인들에게
용기 내서 묻고 싶다.
“우리 정말 오묘한 거 아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