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좋은 생각 품고
머물다가 
떠나가는 곳


어른이 되면 멋진 연애를 하고 싶었어.
배낭을 메고 떠난 유적지에서 우연히 입을 맞추거나,
흔들리는 케이블카에 단둘이 갇혀 두근대며 잠시 손을 잡는 두
사람…… 같은(아무튼, 안경을 벗고 펑! 미인으로 변했다는 설정)

어른이 되면 암이 생길 줄 몰랐어.
종양이 생긴 갑상샘 반쪽을 자르게 될 줄도,
쇄골 위에 툭 튀어나온 흉터가 빨갛게 자리잡을 줄도.

30대에 연애를 하게 될 줄 몰랐어.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사범대에 갔었어. 만약에 진짜로
선생님이 되었다면, 이듬해 봄에 애들이 이렇게 외치곤 하겠지.
― 선생님, 첫사랑 얘기해 주세요!

그럼 나는 자, 책 펴라, 책상을 탁탁 치고,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한 사람을 떠올릴 거야.

정수리에 자라나는 흰머리를 검게 물들였더니
“염색하셨어요? 아쉽다. 멋있었는데.”
하면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사람을.

어쩌다 흉이 남았는지 궁금해하길래
나비 모양 갑상샘을 반으로 자른 자국이라고 설명했더니
“반쪽 날개로도 훨훨 날 수 있어요.”
라고 말해서, 밤새 날 뒤척이게 만든 사람이여,

너는 나를 웃기고, 울리고, 푹 빠져들게 해.
내 삶의 다음 페이지를 궁금해하게 해.

겨울이 온다.
나는 버스표를 끊고
네가 지금 살아가는 시골 집으로 달려간다.

너는 가끔 나를 두고 빈 아궁이로 가.
쉽게 식어버리는 구들을 덥히려고 네가 불을 지피는 사이
나는 혼자 남아 시를 쓰네.

“불이 제대로 붙으려면 오래 걸려요.
그래서 자주 들여다보는 거예요.”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뜨거운 시를 쓰고 싶어져서
늘 옆에 있는 너 몰래
11월 11일에 태어난 사람을 위한 시를 연습했어.

생일 축하해.
빼빼로보다 달콤하고, 대추차보다 따뜻한,
단호박을 익히고도 남아 영혼까지 너끈히 덥히는,
타오르는 시를 쓰려고 애를 썼어.

한 사람을 위한 시를 쓰게 될 줄 몰랐어.
안경이 잘 어울린다면서 선물하는 사람을 만날 줄 몰랐어.

― 11월에 어울리는 시를 써주세요.
그런 부탁을 받았을 때 시는 이미
다 쓰인 거나 다름없었지.

  • 시인 김보나

개인적으로 11월, 하면 왠지 애매한 느낌인데요. 날은 추워지는데 별다른 휴일도 없는 달이라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11월, 이라고 하면 역시 빼빼로데이가 떠올라요. 상술 같기도 하지만 주고받으면 왠지 기분이 좋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11월 11일이 생일인데요. 그래서 11월에 태어난 사람이 보면 기분 좋을 것 같은 시를 쓰고 싶어졌어요. 빼빼로 사 줄까? 했더니 평생 넘치게 받아서 질렸다고 하데요. 그러니까 이 시는 빼빼로 대신 선물하고 싶은 시.
11월에 태어난 사람을 좋아하세요? 그럼 이 시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