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좋은 생각 품고
머물다가 
떠나가는 곳

구두를 신고 걸어가는 앞사람을 본다.

천사 같다는 생각
왜 들었을까.

무슨 일 있어? 전화 너머로 네가 물어오는데 대답할 수가 없다. 이유 없이 내 앞사람이 천사 같다는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보세요? 그렇게 되묻는 네 목소리가 아무리 따뜻하다 해도

빙판길 때문에 앞사람이 넘어지진 않을까 걱정이다. 훤히 드러난 발목이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그럼에도 물 흐르듯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 속의 앞사람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앞사람이.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주변의 소리를 지운다. 주변의 소리. 그러니까 당신은 사람이기를 포기했냐든가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든가 당신의 모든 것을 의심해 보라는

전화가 끊어졌다가 다시 걸려 온다. 괜찮은 거야? 걱정 어린 너의 목소리에 나는 대답한다.
넘어졌어.
나는 넘어지지 않았다. 앞사람도 넘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도 넘어지지 않았다. 너도 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말한다.
넘어졌어.

추운 사람과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런 풍경 속에

내가 있다. 너는 없고. 수많은 사람들과 내가 있지만. 내 볼이 발그레한지 혹은 눈동자가 지나치게 흔들리는지는 알 수 없다.

다들 앞만 보고 걷기 때문에
앞사람은 넘어지지 않는다.

너는 내게 빨리 집에 돌아오라고 오랜만에 요리를 했다고 결국엔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한다.

  • 시인 이수빈


누군가 내게 화자는 ‘왜 이렇게 앞사람을 걱정하고 있나요?’ 라고 물으면 나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할 것이다. 그저 구두를 신어서, 내 앞에 있어서, 넘어질 것 같아서, 와 같은 이유들은 대답이 될 수 없을까?
이 시는 2024 12년 월 어느 날 퇴진 시위에 다녀온 후 쓴 시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구호를 외치며 앞으로, 오직 앞으로만 걸었다. 하나일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처럼 움직이는 장면 속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앞으로 혼자여도 괜찮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게 찾아온 가장 커다란 용기였다.
죽고 싶지도 않고 살고 싶지도 않지만 내가 오늘 무사히 집에 돌아갔으면 좋겠고 미래가 조금은 밝아졌으면 좋겠고 사랑하는 사람이 내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고 내 앞을 걸어가는 저 사람이 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의 전부다.

*이수빈 시인이 이 시를 쓴 시점은 2025년 3월입니다. 온 국민이 고생한 2024년 겨울, 또 힘겨웠던 올해 봄을 기념하며, 더욱 밝아진 우리의 미래를 힘차게 살아봅시다! (팥의 첨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