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겨울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호수 공원으로 향했어. 물안개를 보고 싶어서. 보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못 볼 게 없다고 생각했어. 이곳에서 저곳까지의 거리는 아무리 멀어도 결국 움직임의 문제니까. 몸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지만, 몸이 없어도 마음이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목도리를 하고, 롱패딩을 입고, 핫팩을 두어 개 챙겨서 도착한 호수 공원은 놀랍도록 고요했어. 사람이 없는 곳에서의 고요와 적막은 쓸쓸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이구나, 알게 됐어. 그렇게 동이 틀 때쯤까지 걸었는데 결국 물안개는 못 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도 보지 못하는 게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된 건 아니지만, 아쉬웠어.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구나. 어쩌면 당연한 말이겠지. 그 겨울에는 눈이 꽤 내렸던 것 같아. 당신은 겨울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눈 내리는 날은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빨개지는 손은 신경도 안 쓰고 눈사람의 몸을 만드는 사람이었지. 며칠 뒤면 녹아내릴 걸 알면서도 눈사람을 만들면서, 온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이기적이었지. 그런데 웃음이 났어. 당신의 웃는 얼굴이 종종 나를 더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어느 겨울 당신과 손 인사를 길게 하고 돌아서 집으로 가던 날 문득 생각했어.
우리는 너무 오래 헤어지고 있다.

2
언제였더라, 그래. 아홉 살 때. 합기도 도장에서 엄지발가락이 부러져 두 달간 병원 신세를 졌을 때. 엄마는 발을 절뚝거리는 나를 업고 병원까지 갔지. 나는 곧장 수술실에 들어갔고, 거기서 내가 느꼈던 건 고통보다 두려움이었어. 아프다고 고래고래 악을 질렀던 기억이 나. 엄마는 수술실 밖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다가, 도저히 들을 수가 없어 바깥으로 나갔다고 했어. 나의 두려움이 엄마에게는 또 고통이었을까. 하루에 두 번 주사를 맞아서 양쪽 엉덩이에는 피멍이 들었고, 엄마는 그런 나를 위해 뼈라는 뼈는 다 고아 먹일 작정으로 불 앞을 지키고 서 있었대. 때로 아빠는 보조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했고, 내게 뿌셔뿌셔 같은 과자를 많이 사주었어. 간호사가 들어오면 울면서 등 뒤로 숨었던 나를 보면서 엄마와 아빠는 무슨 마음을 가졌을까.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 내가 어른이 되어서, 아빠는 손목이 부러져 병원 신세를 졌고, 엄마는 몸에서 안 아픈 곳이 없게 되었을 때. 내가 느낀 건 슬픔도 아픔도 아니라 울분이었어. 계속 살기 위해서 어딘가는 계속 아파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 우리는 왜 아픔 속에 있어야 하는 걸까? 그러다가 때로는 아픔 속에 있어야만 살아 있다고 느끼게 되는 걸까.
3
미니야. 너는 아홉 살에 죽었지. 우리는 한 집에 살았지만 지붕은 달랐지. 작은 집 안에서 목줄에 묶인 채 우리가 너를 보러 오기만을 기다렸지. 학교에 다녀오면 멀리서부터 발소리를 듣고 기쁘게 짖으며 꼬리를 흔들었어. 나는 그런 너의 등을 많이 쓰다듬어 주지도, 함께 바깥에 나가 산책로를 오래 걷지도 못했다. 종종 누나를 깨우러 너를 집 안에 들였을 때 네가 이불 위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던 모습,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환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떠올라.
너는 얼어 죽었지. 겨울에. 심장사상충에 걸렸다고 했다. 그 겨울에, 너는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평소답지 않게 문을 닫지 못하게 했다고 들었어. 그게 마지막이었다.
미니야. 엄마가 많이 울었어. 엉엉 펑펑 울면서 미안하다고 말했어. 엄마가 그렇게 우는 모습은 처음 봤어. 자기가 너를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했어. 아빠가 아홉 살이면 오래 살았다며 너의 굳은 몸을 들어 올렸을 때, 나도 엄마를 따라 울었다. 아빠가 너를 묻어 주고 돌아왔어.
그날부터 우리에게는 짖을 수 있는 목청이 없었어. 흔들 수 있는 꼬리가 사라졌어. 우리는 다시는 무언가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죽는 건 다음이 없어지는 일이니까. 우리는 살아서도 다음을 만들지 않기로 했어. 너의 집은 어느새 너의 온기조차 남지 않고, 텅 빈 집 안쪽에는 추울까 깔아두었던 이불 위에 너의 털이 몇 가닥. 그걸 떠올리며 나는 지금 아파하고 있다.
그때는 몰랐어. 미니야. 그때는 몰랐다는 말로 너와 오래 머물지 않았던 그 숱한 날들을 용서받을 수 있을까.
그 후로 일 년 뒤쯤 우리에게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어. 한 뼘 만한 애가 이상하게 엄마 품에 파고들었대. 그 길로 13년 째 한 지붕에서 살고 있어. 그 아이 이름은 짱이. 잠도 많이 자고 간식도 많이 먹어.
미니야. 내 시에 나오는 개는 모두 너를 생각하며 썼다. 나는 그때마다 많이 슬펐어. 그 슬픔을 마주하며 시를 썼어. 너의 눈물 자국을 지워 주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때는 나 너무 어렸지. 그래서 내가 아니라 네가 나를 안아주었지. 나를 지켜주겠다고 큰 개 앞에서도 등을 보이지 않았다.
만약 정말 다른 세상이 있고 죽음 이후에 새로운 삶이라는 게 있다면. 그곳에서 너는 개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용사로 태어나기를. 어떤 시련과 굴욕이 닥쳐와도 결국 헤쳐나가기를. 앞서나가기를.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기를.
그래서 나를 가엾게 여겨주기를. 미니야. 네가 나를 가엾게 여겨 그때처럼 내게 등을 자주 보여주기를. 우리가 오래 함께하기를.
너에게는 자꾸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너의 선한 얼굴 맞은편에서 나는 언제까지나 이기적인 사람으로 남아 있을게. 네가 기억하는 내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을게.
고마웠어.
4
모든 슬픔에 눈물이 함께하는 게 아니듯, 모든 헤어짐에 인사를 할 수 없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았어. 너무 그리워하지는 않을 작정으로 시작한 애도는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고, 어쩌면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가리라는 걸 받아들인 여름. 그럼에도 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멀어짐보다 도착점을 상상해 보기로 다짐한 여름에. 당신은 잘 지내고 있을까. 당신이 슬퍼할 때 눈물은 어느 쪽으로 흐를까. 비가 그렇게 쏟아졌는데 어떤 지역의 저수량은 현저히 낮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잠깐 내릴 거라던 비가 폭우로 변할 때, 걱정보다 격정이 앞설 때.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이 모든 일이 어쩌면 사람 때문이라는 사실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을 때. 나는 당신의 빨개진 손을 떠올렸어. 그 손을 의심 없이 흔들던 당신의 마음을 생각했어. 우리는 죽기 전이라면 언제까지나 죽음 이후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언제나 지금을 살아가지만 언제든 이후가 되니까.

5
어느 겨울에, 어떤 곳에, 때로 받아들이기 힘든 시간 속에서
몇 번의 인사를 더 해야 우리는 헤어질 수 있을까?
안녕,
그 말을 듣고 당신은 내게 다가올 수도 있었지만
등을 돌려 멀어지기를 선택했던 그 겨울처럼
나는 언제쯤 눈 쌓인 한적한 거리에서
발자국을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
- 작가 장대성(글과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