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녕하세요. 어느새 겨울을 맞이하고 있어요. 나를 내보이고 싶던 날과 나를 내던지고 싶던 날사이에서 비가 오듯 이파리는 떨어지고 사람들이 마른 낙엽을 즈려밟고 지나가네요. 바삭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바삭하면 바삭할수록 즐거워하면서, 멀어져갔어요. 멀어져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삐거덕거리는 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이맘때쯤 거리의 바닥이 내게 들려주는 소리들은 모두 외로움과 쓸쓸함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내가 이 거리를 너무 오랫동안 배회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자문해 봅니다. 처음에는 즐겁고 웃음이 멈추지 않는 일들도 시간이 지나고나면 괜히 슬프고 애처로워지곤 하는데요. 이 거리에서 나는 나를 그렇게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기쁨을 인지하고, 화를 삭이고, 슬픔을 받아들이는 동안 내게는 즐거움을 해석할 어떤 감정도 남아 있지 않게 된 것일까요. 이 질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가을을 지나오는 동안 글을 쓰기보다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어요. 그들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면서 내 웃음이 가지고 있을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되새겨보았어요. 내 표정으로부터 사람들이 내린 결론은 아무래도 즐거움이 아닌 것 같았지만, 그것을 나도 알고 있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계절의 내게는 즐거운 일이 많았어요.
내 즐거움이 이 글을 읽는 타인에게도 즐거움으로 가닿을 수 있을까요?
나는 어떤 감정의 글을 써도
결국 슬픔으로 귀결되고 마는 사람일까요?
한 계절이 끝나가고 있는데 여전히 질문만 가득 안고 있네요.
첫 글에서 나는 끝장을 볼 생각이라고 말하였지만, 올해를 더듬어보면 끝장은커녕 반환점도 제대로 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사람은 떠나갔고, 다시금 되돌아왔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내게 이별을 끝마친 표정 몇 가지를 알려주었거든요. 사람이 계속 죽었습니다. 사람이 계속 죽는다는 소식을 몇 번이고 들으면서 살아가는 일은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밟는 일처럼 아무런 일도 아니게 되어갔어요. 슬픔과 아픔에 무감해지지 않도록 나는 나를 밀어붙였어요. 꼭 슬프고 아파야 할 필요는 없는데도, 아무도 스스로를 옥죄어가면서까지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데도요. 그것이 내가 내게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슬픈 사람이 되는 일. 아픈 사람이 되는 일. 겉핥기로 보일지라도 기댈 품을 마련해 두는 일.

2
슬슬 목도리를 해야 할 날쯤 추모를 하기 위한 시를 쓰고 읽었어요.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해요. “너를 사랑했던 사람들과 모여 앉아/뭇국을 먹는다” 그리고 이렇게 끝이 납니다. “가는 데 순서 없듯이/오는 데도 순서는 없어서//나는 일단 기다려볼 작정이야” 이제 세상에 없는 것이 되었더라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살아 있었다는 증명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없는 것은 있지만 없어지는 것은 없다는 마음으로 향초의 심지가 다 타들어 갈 때마다 새로운 향초에 불을 붙였습니다. 어느새 향초도 다 써가고 있네요. 사둔 향초를 다 쓸 때마다 작은 시절이 하나씩 지나가고 있다고 느껴져요. 고향에 다녀온 뒤부터 벽지에 조금씩 생기던 곰팡이 덕에 창문을 살짝 열어두는 습관이 생겼어요. 그것이 언제나 방을 차게 만들지만, 더는 방에 퍼지거나 번지는 것이 없다는 게 나의 작은 즐거움입니다. 무너진 행거를 분해하여 버리고 새 행거를 다시 조립하는 동안, 언제나 중요한 것은 중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무거움 앞에서는 나도 행거처럼 무너지고 말겠죠. 그러나 나는 무너지지는 않은 것 같아요. 즐거운 일이죠. 여전히 발 붙이고 서 있을 힘이 남아 있는 일은요. 그쯤 또 다른 낭독회에서 시를 읽었습니다. 그 시는 중간부를 남겨두고 싶어요. “뿌리를 자르지 않으면 계속 재생되는/대파의 생명력처럼/우리에게도 뿌리가 있다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 일” 종종 이런 문장을 쓰고 나면 몸이 한쪽으로 기우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내가 쓴 문장이 하나의 의지가 되어 나를 좋은 쪽으로 데려가려는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3
친구들과 춘천에 여행을 다녀왔어요. 휴게소에 들러 간식도 먹고, 숙소에서 단체복을 맞춰 입고하하호호 떠들며 고기를 구워 먹다가 선물도 교환했지요. 술을 마시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다 춤을 추고, 다시 웃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다가 눈물을 흘리고, 이런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을 하면서, 우리는 즐거웠어요.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순간 속에서 우리가 가장 자주 짓는 표정이 웃는 얼굴이라는 사실이 기뻤어요. 나는 그날 끝까지 남아 친구들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기억하고 싶었어요. 언젠가 우리가 더는 서로를 보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래서 슬퍼지는 날이 오고야 만다면, 우는 얼굴 위에 그날의 표정을 덧대고 싶어요.

4
누나가 결혼을 해서 고향에 다녀왔어요. 축사를 쓰느라 당일 새벽까지 누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살면서 누나에 관해 이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요. 내 눈이 트이는 것인지 어떤 사람의 좋음이 더는 감춰지지 않는 것인지, 내가 바라보던 누나는 어느새 누구와 견주어보아도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런 좋음을 알아채 준 사람이 매형이라는 사실이 더욱 좋기도 했어요. 나는 사람 많은 곳에서는 벌벌 떠는 성격인데, 이상하게도 축사를 하는 순간에 하나도 떨리지가 않았습니다. 누나는 웃음을 짓다가 이내 울었는데요. 생각해 보면 누나는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어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서서 좋은 일을 하고, 그것을 내색하지 않는 사람.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나의 누나라는 사실이 정말 좋았어요. 누나가 울어서 사실 조금은 기쁘고 즐거웠어요. 그 눈물로 그간 겪은 힘듦이 조금이나마 씻겨 내려가길 바랐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네요. 기쁨이 깃든 날에는 눈물의 온기도 괜히 더 깊을 것 같지요. 당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울었나요? 언제 이제 다시는 어떤 일 때문에 울지 않기로 다짐했나요? 나는 더욱 잘 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무렇지 않게 슬퍼하고 싶어요. 나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내가 가진 손뿐일지라도. 그렇게 나를 쓰다듬어주고 싶을 때가 있네요. 누나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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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내게 일어난 사건들을 그러모으기 위해 나는 감기에 시달렸던 걸까요. 무기력에 짓눌려아무것도 쓰지 못했던 걸까요. 이제 곧 11월이 끝나고 12월이 되어요.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시작되어요. 올해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습니다. 여러모로 힘든 일이 많았고, 갈피를 잡지 못해 골목길을 오래 서성였고, 슬픈 그러나 좋은 노래들을 반복 재생해 들으며 글을 썼어요. 봄을 지나오면서 겪은 사람들로부터 나의 좁은 방 같은 마음을 인정했고, 여름을 지나오면서 한 사람이라는 타인으로부터 사랑이 다 소진되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가을을 지나오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우리라는 순간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기도했고, 이제 겨울입니다. 겨울이 오고 있어요.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하고, 추워 빨개진 손등을 덮어줄 손의 가능성을 믿어볼 수 있을까요.
눈이 언제쯤 내릴까요?
저는 사흘이 지나면 내릴 것만 같은데
당신은 어때요?
이 글을 읽고 나서 사흘 뒤 눈이 내린다면 나를 기억해 주세요. 나는 나를 기억해 줄 당신의 희미한 얼굴을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는 사람으로 있을게요. 그게 나의 즐거움. 한 계절이 시작되는 순간에,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시작되는 순간에.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신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증명이겠죠.
그게 나의 즐거움.
오래 그럴 거예요.
- 글과 사진 장대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