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집을 나섰다. 커다란 열기에 숨이 턱- 하고 막힌다. 그렇지만 걸음을 늦출 순 없다. 아무리 기다려도 초록 불로 바뀔 생각을 하지 않는 집 앞 횡단보도 신호등. 발을 동동 구르던 그때. 열차가 역을 떠났다는 안내음 들린다. 망연자실한 마음은 이내 꽉 붙잡고 있던 허리를 놓친다. 자세가 불량해진다.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었지만 동동 구르던 발은 어느새 굼뜬 군함처럼 움직이고. 뜨거운 열기를 가로지르며 아주 천천히 운항을 시작한다. 신호등 맨 아래 칸에 뜬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마음 한켠에 부종처럼 달리는 귀찮음. 겨우 횡단보도를 다 건넜을 때 두 번째 열차가 역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안내음을 어렴풋이 감각한다. 다시 힘을 내보는 군함의 표면에 미세한 물방울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마찰력이 약해질 때마다 열기를 비집고 미끄러지는 군함의 속도가 조금씩 높아진다. 이젠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콧잔등에도 작은 땀방울들이 버섯처럼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때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한차례 불었다. 그리고 뺨을 스치는 미지근하고 축축한 감각 하나. 이것은 분명 몸에서 자생하는 물방울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이윽고 뺨을 스치는 차갑고 기분 나쁜 감각 둘 셋. 늘어나더니 거대한 굉음을 동반하며 눈 앞을 가릴 정도의 수많은 물방울이 하얗게 우리를 습격했다. 당황한 군함 두 척은 급히 선수를 세라믹 지붕 아래로 집어넣었지만 후미는 폭삭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급히 돛을 펼치고 그 아래로 숨어든 몸들의 꼴도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건너온 횡단보도를 바라보고 선 몸들의 시야에 들어온 물결은 거세게 도로를 지워나간다. 하수구에서 떠오른 담배꽁초가 어뢰에 폭격을 당한 잠수함처럼 물의 표면에서 이리저리 표류하고 가로수에서 떨어진 나뭇잎이 구조선처럼 위태로운 곡예를 선보이며 개미와 지렁이를 주워 담는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이 두 번째 열차가 역을 빠져나가는 안내음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급하게 집을 나섰던 패잔병들은 우울한 표정을 숨긴 채 다시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초록 불이 될 때까지 젖고 또 젖는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친구에게 말하자 믿지 못하는 눈치다. 늦잠을 잤거나 약속을 잊은 거라면 솔직하게 말하라고 한다. 나는 지금 세 번째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선로의 온도가 너무 높아서 천천히 운행되는 열차와 갑작스러운 폭우에 천천히 운행되는 열차를 놓친 후라고 말한다. 그러자 친구는 자신도 그런 일을 몇 번 겪은 후론 예상하는 시간보다 삼십 분 정도 일찍 집에서 나선다고 한다. 나는 친구를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친구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다음 여름부터는 이러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친구는 괜찮다고 말한다. 지금 자신의 발도 다 젖어서 건조대에 널어두었다고 한다. 어제는 도로 연석에 잠깐 앉았다가 엉덩이가 녹아서 보형물을 사러 문래동까지 갔다 왔다고 한다. 문래동 골목의 활기찬 철강 기계 소리를 기대하고 갔지만 생각보다 문을 연 곳이 없어서 근처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 먹었다고 한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엉덩이가 되살아났다고 한다. 나는 믿지 못하는 눈치로 어째서? 라고 말한다. 친구는 커피에 들어 있는 각성 성분이 엉덩이의 근육에 작용한 게 아닐까? 하고 추측했지만 나는 역시 그런 말을 믿을 사람이 아니다. 그것보단 카페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프레온 가스에 엉덩이 근육이 일시적으로 수축해서 그런 거라는 추측이 더 타당해 보인다. 그렇게 말하자 친구는 일리가 있다며 웃었다. 왜냐면 카페에서 나오자마자 더 빠른 속도로 어깨부터 녹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지금 성치 않은 몸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이상한 핑계를 대며 오지 않자 화가 났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괜찮단다. 생각해보니 자신의 상황도 나의 상황도 죄다 이해가 가지 않는 여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이 변덕을 부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예측 가능한 자연을 소홀히 대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자연이 권능을 부릴 땐 변덕보다 더 고약한 상황이 인간의 권능을 무능으로 단숨에 치환해버린다. 나는 요즘 여름에 대해 더위보다도 두려움을 느낀다. 많은 사람이 올해 더위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너무 덥다거나 너무 습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에 나는 강박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여름의 이상 행동이 우리의 의지 상태에 은근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인 여름에 나는 슬픔과 기쁨을 떠올렸다. 슬픔과 기쁨 사이를 오가는 생의 추를 떠올렸다. 그것의 모양은 대체로 바람을 가르기 쉬운 모서리를 가진 형태로 떠올랐다. 생의 추가 가르는 바람의 속살로부터 우리가 읽어내는 자연의 나이테는 얼마나 촘촘했던가. 밀집되어 있는 그 시간 속에서 인간은 또 얼마나 겸손했던가. 그리운 얼굴들이 생각나고, 몇 번 절을 하고 나면 바람과 함께 훌쩍 시절이 되어버렸던 인간의 역사를 우리는 얼마나 소중히 했던가. 그리고 나는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에 자연히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아마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물장구를 치며 노는 아이들의 무해한 표정을 여름은 결코 시기하지 않았었는데. 붉은 하늘로 뒤덮인 늦은 저녁 강변에서 맥주 한 잔을 나누며 삶의 지우개를 꺼내 들던 연인들의 이야기를 여름은 결코 엿듣지 않았었는데. 거대한 철문을 걸어 잠그며 돌아서는 아저씨의 때 묻은 손을 여름은 결코 달빛으로 비추려 들지 않았었는데. 아버지를 기다리다 새근새근 잠이 든 아이들의 몸에 여름은 종종 열꽃을 피워냈지만 그 옆에 함께 잠든 엄마의 얼굴엔 푸릇푸릇한 꿈을 드리웠었는데.
이젠 여름이 두렵다. 우리를 발가벗기는 여름이 두렵다. 그러자 여름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내가 살려고 그래. 이 목소리엔 자성이 있나 보다. 우리는 몸을 바짝 엎드렸다.
<물끄러미 건너가기> 여름 산문
- 작가 김웅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