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좋은 생각 품고
머물다가 
떠나가는 곳
  • Agnes Varda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를 보고


2018년, 군산에서 <안녕하제>란 전시를 한 적이 있다. 하제라는 마을에 관한 전시였다. 군산 미군기지 바로 옆에 위치한 그 마을은 원래 섬이었다. 그러다 일제에 의한 간척사업으로 육지와 연결된 항구마을이 되었다. 이후 새만금 방조제가 만들어지며 바다가 막히긴 전까지 하제마을의 포구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다. 그러나 마을과 가까운 곳에 미군기지의 탄약고가 지어졌고, 탄약고가 위험하므로 안전거리 확보를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600세대, 2,000명이 넘는 하제마을 사람들은 집단이주를 당했다.

전시를 준비할 당시, 하제마을에는 주인을 잃은 텅빈 집들만이 남아있었다. 도시의 집으로 보금자리를 옮겨야 했던 사람들은 많은 세간살이를 남겨놓고 떠났다. 이 세간살이들이 우리의 주요 전시품목 중 일부였다. 이 전시는 군산에서 활동하는 평화운동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뤄졌는데, 우리는 텅빈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남기고 간 것들을 주우러 다녔다. 그대로 있었다면 건축폐기물과 섞여 어디론가 사라졌을 누군가의 물건들은 우리의 줍기 행위를 통해 전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기타, 가족 앨범, 상장, 우편함, 어린이가 그린 그림액자 등. 버려진 그 물건들은 하제 마을에 살며 한 시절을 영유했을 누군가의 풍요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안녕하제(2010)展 일부

<안녕하제>전을 준비하면서 나는 줍는 행위의 즐거움을 알았다. 버려진 것들 중 쓸만한 물건이 어찌나 많은지 스스로 욕심쟁이라고 느낄 정도로 주워댔다. 그전까지는 왜 이런 즐거움을 모르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생각해보니 현대소비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일명 VIP)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아주 많은 돈을 썼거나 쓸 예정인 인물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사는 대신 누가 내다 버린 것을 줍는 일은 어딘지 구차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마음이 내 안에도 있었던 것일까?

이삭 줍는 여인들과 바르다

스스로를 ‘이미지 줍는 사람’이라 명명한 프랑스의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는 다큐멘터리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를 통해 줍는 행위를 탐구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양한 것들을 줍는다. 수확이 끝난 뒤 밭에 남겨진 감자, 상품규격에 맞지 않아 대규모로 버려진 감자, 아무도 돌보지 않는 밭에서 나온 포도, 폭풍이 지나간 후 굴 양식장 주변으로 밀려 떨어진 굴, 시장이 파한 뒤 버려진 과일과 야채, 사람들이 거리에 내놓은 가전, 가구 등. 이유도 다양하다. 생존을 위해, 경제적인 부담을 덜기 위해,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만의 생태적 사회운동을 수행하기 위해 줍는다. 프랑수아라는 인물은 쓰레기통에서 얻은 것들로 살아가는데, “길거리에 쏟아지는 이 모든 낭비를 두고 보는 것이 너무나 수치스럽다”고 말하며 자기 삶의 방식을 설명했다.

굴을 줍는 사람들
감자 줍는 사람들

줍는 사람들과 교차되어 농장주, 시설 관리인 등 업계 사람들도 등장한다. 일부는 사람들의 주울 권리를 인정하지만 다른 일부는 줍는 이들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반감은 줍기 행위가 금기시되는 현대 소비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에 바르다는 영화에 법복을 입은 변호사들을 등장시켜 예로부터 법이 보장하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주울 권리를 확인시킨다. ‘이삭 줍기 권리(droit de glanage)’는 1554년 11월 2일 프랑스 왕 앙리 2세가 내린 칙령으로, 추수가 끝나면 가난하고 가련하고 불우한 자들이 남은 이삭, 곡식을 주울 수 있도록 허용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줍는 행위의 역사는 유구하다. 농경사회 이전부터 인류는 매우 오랜 기간 수렵·채집 생활을 통해 삶을 꾸려왔다. 인류뿐인가. 야생동물들에게도 줍는 행위는 삶에 필수적이다. 대표적인 겨울 철새인 가창오리는 주간에 저수지, 강 등의 습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야간에 주변의 농경지로 이동하여 벼 낟알과 같은 먹이를 주워 먹는다. 두루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는 주로 민간인 통제지역 일대의 논, 율무밭, 옥수수밭 등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결빙된 저수지, 강의 모래톱 등을 잠자리로 이용한다.

동물들의 주울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그 예로, 고의로 농약이 묻은 볍씨를 뿌려두어 철새들이 죽게 만든 사건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건은 매년 벌어지고 있다. 월동을 위해 수천 킬로를 날아온 철새들에게 그것은 너무나 가혹한 처사이다. 또한 농약을 먹고 희생된 사체를 다른 동물이 먹으면 먹은 동물들에게까지 그 피해가 가므로 이는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논에서 떨어진 쌀알을 주워 먹고 있는 가창오리
  • 글과 사진 제공 박지연
  • 사진 출처는 하단에

바늘없는 시계를 주운 뒤 자신의 공간에 배치한 바르다. 멋진 오브제가 되었다.

https://beursschouwburg.be/en/events/come-together/hana-miletic-materials/reading-group-session-led-by-charlotte-van-buylaere-third-meeting/

https://itpworld.online/2024/05/09/the-gleaners-and-i-les-glaneurs-et-la-glaneuse-france-2000/

https://www.boloji.com/articles/14118/the-gleaners-and-i-2000

https://news.nate.com/view/20210308n00038

논 사진 출처: 뉴스서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