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를 보고
실제로 찾아올 먼 미래인지, 단지 환상에 불과한지 구분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내겐 그랬다.

이 영화의 원작인 만화 작품에 따르면,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은 고도로 발달한 기계문명이 ‘불의 7일간’이라 불리는 대전쟁으로 망한 지 1000여 년이 지난 시점이다. 영화는 한 소녀가 썩은 바다(부해)라 불리는 숲을 정찰하며 시작된다. 이 숲은 균들이 독을 품은 포자를 뿜어대어 방독면 없이 들어갈 수 없는 무서운 미지의 장소이다. 이 세계에서 인간과 자연의 영역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소녀는 두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숲의 ‘위험함’ 너머를 알려 애쓴다. 소녀는 숲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곳의 다양한 생명들을 관찰하며 말을 건네기도 한다. 그 관계를 차분히 이어 나가며 어른들이 만든 단절의 세계를 조금씩 허문다.
주인공 소녀는 ‘바람계곡’의 공주로, 이름은 나우시카이다. 소박하고 평화로운 마을인 바람계곡의 주민들은 바람에 기대어 산다. 바람의 도움으로 부해의 영향을 피해 생활하고 바람을 타는 이동수단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 마을의 평화는 인간 세계를 재건하겠다는 세력가의 야심으로 인해 산산조각난다. 군사국가인 토르메키아 왕국은 과거 불의 7일간 대전쟁 당시 인류 문명을 망하게 한 결정적 요인, 불의 병기 거신병(거대한 신의 병사)을 부활시켜 부해와 그곳을 지키는 ‘오무’(거대한 애벌레같은 생물체)를 모두 불살라버리려고 한다. 바람계곡은 하필 그 격동의 장소가 된 것이다.

숲과 그곳의 생명들을 모조리 없애는 것이 정답이 아님을 알았던 나우시카는 그 초토화를 막으려 한다. 나우시카가 그 과정에 깊게 관여할수록 숲이 품은 비밀은 그녀 앞에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 비밀은 사람들에게 가장 위협적이었던 존재, 부해와 오무에 있었다. 부해는 오염된 자연 세계를 정화하는 숲이며, 오무는 정화 중인 숲을 지키는 존재였다. 오무 뿐만이 아닌 왕잠자리와 같은 곤충도 숲의 파수꾼이었다. 누군가 숲에 침입해서 파괴적인 행동을 하면 왕잠자리는 경고음을 내어 숲의 다른 생명들에게 이를 알렸다. 나우시카는 이 모든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려 했지만 오무와 부해가 없어져야지만 인간세계가 새로 설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이들에게 진실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실이 통한 것은 오무 쪽이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부해를 지키는 오무 떼가 마을로 진격할 때 일어난다. 병사들은 오무를 숲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 그들의 새끼를 인질로 삼아 상처를 입혀 거신병이 있는 쪽으로 모는 저열한 작전을 썼는데, 나우시카는 가엾은 새끼를 구출하고 맨몸으로 오무 떼 앞에 선다. 새카만 오무 떼 속에서 나우시카는 의미없이 희생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그들의 행동이 변한다. 오무들은 화를 멈추고 공격을 그만둔 채 자신들의 특별한 능력을 사용해 상처입은 나우시카를 치유해준다.
오무의 분노는 땅의 분노였다. 그 분노가 커지면 대기도 분노하여 사람들을 살리던 바람도 멈추었다. 그러나 땅의 분노가 멈추니 바람도 돌아왔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오무도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 분노가 멈춘 시점은 사람들이 자연에게 함부로 가한 행동들을 멈췄을 때였다.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그저 스스로 정화하는 자연을 가만 두는 것뿐이었다. 자연은 오염된 스스로를 가장 아래에서부터 치유했다. 땅, 물, 균, 바람, 풀, 나무, 곤충… 이 존재들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서로를 지키며 무너져버린 생명공동체를 다시 쌓아올리고 있었다.
자연이 갖는 치유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나우시카의 할머니가 말했듯 물과 바람은 백년 걸려 숲을 키운다. 그 시간동안 자연이 보여주는 모습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심지어 사납고, 때론 무섭다. 그래도 어쩌랴. 별수 없다. 나무와 숲의 시간이 필요할 뿐.

- 사진 출처(순서대로)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0625_0003227423
나무위키 페이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4896
- 글 박지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