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좋은 생각 품고
머물다가 
떠나가는 곳

2025년 가을에 첫 개인전 <흑백, 해몽>을 체리암에서 열었던 홍혜정 작가와의 대화

문학소녀로 자란 소설가 지망생이던 홍혜정은 평소에 낙서를 즐겼다. 그래서 낙성대쪽 단골 음악 펍인 사운드마인드에서 음악신청지에 낙서를 하곤 했다. 특히 문예지에 단편소설 투고한 뒤 낙담한 기분을 달래러 바에 앉아 그렸던 것이다. 이 그림들을 알아본 사장님이 그림을 본격 그려보라고 격려한 결과, 인스타에 하나씩 올리고 있던 차에 팥이 그녀가 펼쳐놓은 독특한 흑백 세상에 관심을 갖고 연락을 했다. 그러다 전시까지 하게 되었다.

*인터뷰

팥> 작년 봄에 전시기획을 할 때, 대표 그림을 함께 뽑아 포스터로 만들기로 한 작품은 <지도가 지워진 흔적>이었죠. 마음 속 지도라고도 설명하셨는데 길가다가 벽에 스카치테이프가 떨어져 난 흔적, 흐릿한 형태를 보고 어떤 궤적을 떠올렸다고 하셨죠. 사실, 어떤 흔적을 바라보고 이야기가 떠오르는 소설가적인 상상력이 있으실 것 같아요. 무엇이든 그냥 휙 지나가지 않는 감수성 말입니다.

ㅎㅈ> 예전부터 뭔가의 흔적을 유난히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없는 뭔가가 있었던 자리니까 잘 들여다보면 그게 어떤 것이었는지, 왜 그런 흔적을 남겼는지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결국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런 흔적들에서 시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팥> 사실 이번 전시 작품을 각기 바라볼 때는 꿈을 재구성했다는 설명만 듣고 제목을 몰랐기 때문에 그냥 누군가의 상당히 다채로운 모습의 꿈을 들여다보듯이 했어요. 알 수 없는 세계로 빨려드는 느낌이 흡사 에셔(Escher)나 달리(Dali)의 그림체를 닮았어요. 하얀 면을 채우는 게임같이 그려나간다고 하셨는데 작가님 머릿속에 오만가지 문양/모양 제조기가 있어보여 신기하네요. 사람의 몸을 해체하는 것도 좋아하시나봐요? 손도 자주 등장하는데 특별히 담은 뜻이 있을까요?

ㅎㅈ> 우선, 사람의 몸을 해체한다는 주제는 그림을 그리기 전부터 좋아했습니다. 몸의 일부분만 클로즈업해서 보면 피부의 감촉이나 미세한 결 같은 물질적인 특징에 더욱 집중하게 되잖아요. 그런 데서 느껴지는 생생함이 좋았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전신이나 얼굴 표정을 통해 우리가 흔히 아는 상징들을 직접적으로 환기시키게 될까 경계했습니다. 제가 저 자신의 표현을 개발하기도 전에 그런 상투성에 쉽게 기대고 호소하게 될까 걱정되어서요.

그러다 보니 손이 자주 등장하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얼굴 못지않게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으면서도, 얼굴처럼 직설적이지는 않으니까요. 문양은 왜 자꾸 등장하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뭔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피하려는 성향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이질적인 것들을 콜라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취향 때문인 같기도 합니다.

팥>저도 콜라주 참 좋아해요. 전시 책자에 보니 아주 기발한 제목들이 수수께끼처럼 달려있네요. ‘도자기의 산세’, ‘구겨진 몸의 궤적’, ‘어둠의 차원들’, ‘안으로부터 무너지는 사람들’, ‘구조와 틈’, ‘견고함의 이면’… 단편소설 제목으로 훌륭할 것 같아요. 특히 ‘구조와 틈’은 모두가 들어가야 하는 구조에 대해 그렸지만 자꾸 틈을 만들었다 고 설명하셨어요. 예술가의 역할이 바로 이런 다양한 틈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야 우리가 살아가는 데 숨통이 좀 트이지 않을까요?

ㅎㅈ> 적어도 저는 그런 그림들을 그리면서 숨통이 좀 트였습니다. 하나의 그림에 일부러 여러 시점을 넣고, 형태를 휘어진 거울에 비추는 것처럼 왜곡되게 그려보고, 착시도 주고, 그리다가 왠지 이렇게 진행시켜야 할 것 같으면 일부러 다르게 진행시켜 보고…말로 표현이 어렵지만, 그렇게 현실을 다르게 보거나 재구성하는 과정이 해방감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팥: 아 바로 그런 해방감 때문에 작품을 하시는군요! 꿈의 극장으로 꾸민 작품(체리암의 오래된 반닫이가 극장으로 변신) 옆에 노트가 걸려있었는데 이런 문구가 손글씨로 적혀있었어요.

어둡고 흐릿한 골짜기에 고여드는

마음 벽 너머의 틈

저는 전시 전반을 잘 말해주는 시적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멋있어요, 뭔가 아스라한 기분. 작가님만의 골짜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요새 더 Doomscroller가 되었어요. 이 세상의 여러 재난/나쁜 소식에 대해 자꾸만 찾아보는 사람이라는 뜻인데요… 아주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답니다. 작가님은 어떠신가요?

ㅎㅈ> 저는 요즘 트럼프 관련 뉴스들을 접할 때마다 세계의 미래가 걱정됩니다. 인터넷 반응까지 보면 정말 세상이 망할 것 같고요. 그리고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요즘 페이스북 앱에 들어가면 과거의 어둡고 기묘한 역사에 관한 포스팅이 자주 뜨는데, 그런 거 보고 인터넷 검색에 빠져들기도 해요. 얼마 전에도 케네디 가의 역사를 검색하면서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되었을까 혼자 생각해보고…이게 정말 지식을 알려고 하는 좋은 마음인 건지, 남의 불행을 파고드는 악취미인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인스타 팔로우하는 라틴계 미국 배우가 인스타 스토리로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움직임을 전달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응원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냉소하거나 비관하는 건 아닌가 반성도 하게 됩니다.

팥>하여간 여러 감정선을 타게 되는 요즘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일종의 번역이고, 나 자신조차 내가 가장 오래 아는 타인 내지는 지인”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참선과 맞닿아있네요. 아마도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후회할 때 가장 신중한 번역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너무 쉽게 자기 위로를 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ㅎㅈ> 저 같은 경우는, 생각이나 마음을 스스로 정리할 때도 결국 말이나 글로 풀어내야 하더라고요. 생각이나 마음으로 있을 때는 잘 잡히지 않아서요. 그래서 번역이라는 말을 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관해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신중한 번역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정말 동감합니다. 자기 위로에 관해서는 저는 조금은 내려놓긴 했는데요, 자기 위로를 하면서도 ‘그래도 이건 자기 위로일 뿐이고 맞는 말은 이런 말이지.’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추하지 않게 잘 사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팥> 머릿속에서 정리를 참 잘하시고 계시네요. 그리고 “정체성은 신체. 소통은 번역이다.” 이 문장을 되뇌이며 작업을 하기도 했다고 하셨죠. 설명 부탁해요.

ㅎㅈ> 어느 정도 그림이 쌓이니까 스스로 구조화를 해보고 싶어져서 그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온 키워드가 정체성, 신체, 번역이었습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회사에서 일하면서, 사람의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이 신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그런 관심사가 그림에서도 나타나서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같은 언어로 소통하더라도, 사람마다 자신의 고유한 사고방식이 있으니 서로 주파수를 맞춰야 하잖아요. 그게 번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팥> 서로 적극적으로 주파수를 맞추는 문화가 생기면 좋겠어요! 작가님 그림을 보면 소통을 넘어 남의 몸까지 들어가는 상상도 해보셨던데 틈이 벌어져 방이 되고, 이윽고 남의 몸도 방으로 보게 된 것인가요?

ㅎㅈ> 그 상상은 사실 영화 <너의 이름은.>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흔히 몸이 바뀔 때는 영혼과 몸이 깔끔하게 분리된다고 전제하잖아요. 그런데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의 몸이 진짜로 바뀐다면 영혼과 칼로 자른 듯 깔끔하게 분리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몸에 남은 기억, 습관, 감정 같은 것들 때문에 그 절단면은 너덜너덜 내지는 끈적끈적하지 않을지. 만약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간다면 그 몸에 남아있는 감정이나 기억 같은 것들을 바로 느낄 수 있을지. 그것 역시 공감이나 소통이라 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팥> 작가님의 상상력은 매우 구체적이군요. 그런 절단면까지 생각하다니! 언제 말씀하신 일본 만화영화를 봐야겠네요. 이번 전시형식이 상당히 입체적입니다. 저는 각 작가가 저희 작은 공간을 각자의 개성대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 흥미진진하고 여러분의 창의성에 놀라곤 해요. 연극동아리도 하셨고 연극관련 아카이브 쪽 일도 하셨던 배경이 엿보입니다. 삶의 경험을 남들보다 입체적으로, 극적으로 소화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남다른 시각이 있으실 것 같아요.

ㅎㅈ> 감사합니다. 사실은 제가 전문 작가도 아니고 전시 경험도 없다 보니, 체리암에서 전시하시는 다른 전문가 분들처럼 공간을 능숙하고 멋있게 연출할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저 다운 스토리텔링에 맞게 전시를 꾸리는 게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체리암이 환경친화적인 공간을 지향하고 저도 거기에 동의하다 보니, 전시를 구상할 때 그런 방향성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간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그림들과 어우러지게 하는 게 체리암에도 어울리고, 일상 속에 환상이 끼어든다는 점에서 ‘꿈’이라는 주제와도 맞을 것 같았습니다.

팥> 환상이 끼어든다, 재밌는 표현이네요. 요즘 희곡을 쓰고 계시고 저에게 원고를 보여주셔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희곡 형식을 읽는 재미가 또 아주 색다르네요. 특히 체리암에서 전시하게 된 배경내용이 잠시 대사에 비춰서 어찌나 반가웠던지요! 아직 미발표작이라 몇 가지만 여쭤보면 체홉의 <갈매기>를 중요 모티브로 삼으신 것 같던데 혹시 ‘질투심’이 중요한 주제라서 그런가요? 이 작품을 모르는 분을 위해 조금 설명을 해주실 수 있나요?

ㅎㅈ> 사실 <갈매기>의 모티프가 들어간 것은 완전히 즉흥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희곡에 러시아인이 등장하는데, 학창시절에 연극 동아리를 했던 사람이 러시아 사람을 만난다면 당연히 체홉 얘기가 하고 싶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학창시절에 가까이서 본 학생 연극이 <갈매기>여서 들어간 것인데, 넣고 보니 <갈매기>의 인물 구도를 활용하고 싶어서 그런 대사를 일부 집어넣었습니다. 젊고 빛나던 시절의 후일담이라는 점에서도 제가 쓴 희곡 내용과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했고요.

팥> 작품에서 성적 자유분방함의 갈망과 남녀관계의 불안정성을 읽으며 요즘 사람들의 연애 방식이 옛날에 비해 자유로워 겉으론 좋아보여도 사실 선택지가 많아진 만큼 갈 길을 잃었다는 생각도 했어요. 틴더로 스와이프하는 대상이 되어보지 못한 제 세대는 선택지가 다양하진 않았고 느리게 한 사람을 알아가는 와중에 시간, 관계의 면에서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어요. 관계를 끊는 것도 정성을 들여서 했던 시절을 살았어요. 온갖 마음의 ‘국 끓이기’가 완성되고 나면 무언가 이야깃거리는 남았었어요. 요즘은 싫증나면 바로 문자로 일방통보하기도 하니 사람도 인스턴트 음식같이 소비되는 대상이 되었다고 느껴집니다. 어떤가요?

ㅎㅈ> (이 답변은 팥과의 개인적인 대화로 진행했고 혜정님 요청으로 싣지 않고, 마지막 문장 일부만 공개) …실제로 사람을 만나서 지지고 볶고 하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알아가고, 막연한 혐오도 내려놓고, 직접 경험하면서 세상을 판단했으면 좋겠습니다.

팥> 애인/친구에 개념에 대해 대사가 나오는데 제가 경험한 우리나라와 외국의 경우 비교하자면 한국에서 좀 더 구획을 확실히 하는 거 같아요. 우리 오늘부터 사귈까? 이런 식의 말투는 서양에는 없지 않나 싶어요.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선언하고 시작하는 게 더 속시원하고 서로 약속을 전제로 관계 형성을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반면에 서양에서는 캐주얼한 관계를 더 길게 가지며 탐색하는 분위기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러니 100일, 1000일 기념하는 그런 건 생소하죠, 정확히 언제부터 사귀었는지 모르기도 하고요. 요즘은 국제커플이 워낙 많으니 한국식의 아기자기함이 널리 알려지기도 하겠군요.

ㅎㅈ> 맞아요. 한국이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어떤 문화적 맥락 속에서든 서로에 대한 신의와 확실한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팥> 아무쪼록 소설이든 희곡이든 계속 글쓰기 잘 하시고 그림도 손을 놓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창작의 즐거움은 누구나에게 허락되는 행복은 아니니까요.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시가 있다면 한 편 소개해주세요.

ㅎㅈ> 감사합니다. 시를 읽은 지 참 오래 되었는데, 최근에 읽었던 시 중에서는 권누리 시인의 <파랑계>가 인상깊었습니다. 특히 ‘나를 살린 것은 천사가 아닌 악마였으며,/죽은 친구는 지난 애인들의 얼굴을 하고 꿈에 나타났다’라는 구절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