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좋은 생각 품고
머물다가 
떠나가는 곳

풍류


  • 둥둥

    이렇게 배고픈 밤엔 미역국을 끓여요 혼자 먹기 아까우니 친구를 불러요 친구가 올 때까지 무얼 할까요? 제 경우엔 ― 친구를 기다려요 차가 막힐 거예요 마음에 드는 옷 없을 거예요 더운 물이 나오지 않을 거예요 몰라요 배가 너무 고파서 과자를 뜯었어요 봉지 안의 별조각들을 쓸어 삼켰어요 제가, 허풍이 좀 있어요 국 끓는 소리에 잠이 솔솔 오는데 와서… 더 보기

  • 소격동

    오래된 식당에서 나왔을 땐 일곱 시 정도 몇 분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다만 개망초 흰 꽃잎이 난분분한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면 대충 반으로 나눠 먹던 호빵처럼 두 쪽으로 찢어진 구름 사이에 어둠이 들어차는 중이고 나는 알게 모르게좋아지는 중이야 여름 하늘에서 가뿐히 호빵을 발견하듯네가 숨겨둔 슬픔도 알아챘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종로는 여전히 골목이 많네 내가 가진 골목과 네가 가진… 더 보기

  • 살려고 그래

    급하게 집을 나섰다. 커다란 열기에 숨이 턱- 하고 막힌다. 그렇지만 걸음을 늦출 순 없다. 아무리 기다려도 초록 불로 바뀔 생각을 하지 않는 집 앞 횡단보도 신호등. 발을 동동 구르던 그때. 열차가 역을 떠났다는 안내음 들린다. 망연자실한 마음은 이내 꽉 붙잡고 있던 허리를 놓친다. 자세가 불량해진다.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었지만 동동 구르던 발은 어느새 굼뜬 군함처럼… 더 보기

  • 작년말에 팥이 강원도 원주의 그루터기를 방문, 부녀가 전시하는 <부엌전>을 보고난 후 그림작가 김지애를 만났다. 우선 그 따스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루터기라는 장소의 아름다움에 반했다. 전시작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나무를 깎는 아버지 김진성 작가의 정감어린 소반, 쟁반, 그릇, 덮개, 주걱 하나하나가 다 주옥같았다. 또 그 감성 그대로 따님인 보리차룸 김지애 작가가 그린 한없이 사랑스러운 그림들이 함께 전시되어… 더 보기

  • 오늘 수영하기

    2025년 5월, 두 수요일밤에 걸쳐 문학평론가 김웅기 선생이 김수영 시 수업을 진행하였다. 김웅기 선생은 체리암 산문 연작 중 <물끄러미 건너가기>의 필자이기도 하다. 팥이 김 선생님께 강연을 의뢰하게 된 인연은 장대성 시인의 체리암 시 낭독회의 진행자로 만난 때부터 이어졌다. 경희대학교에서 <김수영의 변증법적 공간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같은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2회에… 더 보기

  • 버드나무 아래에서

    녹음 아래로 작은 빛이 발등에 내려앉는다주머니 안에 나 모르게 들어있던 손톱만 한 흰 종이학의 모양으로 첫 도둑질중학생 때 좋아하던 애의 교복 마이 단추,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딱 하나,그 남자애는 우리가 살아보지도 못한 시대의 노래를 허밍으로 부르곤 했지 걔에게 선율을 옮겼을 사람은 누구일까? 자주 그 어깨와 옆태를 그려봤지아주 오래전, 키가 걔만 할 때 그 노래를… 더 보기

  • 용융

    봄어깨에 두른 외투를 떨어뜨린 사람 여름민소매 원피스를 고르는 사람 그날 다 봤다 고가 아래두껍게 껴입고 사는길사람 기지개 켜고아침에 몇 번솜주먹으로 내리치다 만 겨드랑이 생각이 났다 너와 나의 림프절우리들의 대관절 길길이 길이길이날뛰며 꺼지는 법 없이 오늘도 사람 많은 길을 걸었다 유럽 같아?CD 있어요?신이 한국인이야? 사진 찍어주던 사람에게멀리 농성 소리가까이 연주 마친 사람에게 그렇다고 믿고 있을 사람에게… 더 보기

  • 체리암x양유당

    계동과 가회동을 잇는 음악회 체리암이 정식으로 문을 열기 전(공사 시작 전) 어느 여름에 팥은 가회동의 멋진 한옥 양유당을 찾아 가보았어요. 공예 전시를 보러갔다가 친절한 김미경 관장님과 담소를 나누던 중에 고등학교 선배님이라는 반가운 사실을 알게 되었죠.(서문여고!) 우리의 북촌 사랑이라는 정겨운 공감대로 서로의 공간을 가끔 찾았고 팥은 부모님의 결혼 50주년 가족 행사도 양유당에서 치뤘습니다.(엄청나게 흡족해 하셨지요. 더욱이… 더 보기

  • 5월 공연 메모장 3

    체리지기들이 여행 다니면서 제일 듣기 좋아하는 음악 중에 꼽는 뮤지션이 있다. 바로 전설적인 팻 메시니가 서울에 오는데 안 갈 수가 없지. 곰이 젊은 시절부터 엄청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라 팥이 예매를 하고 곰에게 비밀로 하고 있었다. 드디어 공연날 경복궁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얘기했더니 사실 광고 보고 은근히 이 공연이길 기대했었다고 했다. 곰은 늘 일이 원하는 대로 된다!… 더 보기

  • 지난 달 우연히 녹색연합의 자연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공생>2 퍼포먼스의 참여자를 모집하는 공지를 보게 되었다. 동식물을 소재로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여러 사람들이 광장에서 춤으로 보여주는 자연의 권리의 메시지가 어떻게 실현될 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연산호, 산양, 상괭이, 저어새, 흰수마자 퍼포먼스의 준비과정은 우선 5월 초 화상 회의로 시작되었다. 연출을 맡은 안영준 무용가를…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