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좋은 생각 품고
머물다가 
떠나가는 곳

풍류


  • 끝나지 않는 유행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습관처럼 기록한다. 찰나에 잊히는 사진도 있지만,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보는 사진도 있다. 하루 중 거울보다 더 자주 들여다보는 얼굴. 타인의 얼굴.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 그걸 애정이라 부를 수 있다면 애정이란 무엇일까. 자꾸만 보고 싶게 하는 이 마음은 또 무엇일까. 드넓은 바다부터 내 무릎 위를 기어가고 있는 개미까지. 저 더 보기

  • 이렇게 시작해보려 한다. 봄은 견디어 와서 견주어 가는 것. 견딤과 견줌 사이의 찰나를 인연이라 한다면, 그 같은 사건은 흩날리는 꽃잎과 머리 내미는 잎사귀의 짧은 악수와 퍽 닮았겠다고. 나는 지금 한산한 골목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의자처럼 멍한 눈빛으로, 그러나 수심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모든 것을 물끄러미 건너보고 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 거짓말 같겠지만 섞여 들려오고 더 보기

  • 추억의 여행 <자장가>

    정선의 정물화 강연을 계기로 처음 체리암 한옥을 방문했다. 대문을 지나 마당의 기단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아담한 거실이 있고 오른편 미닫이 문을 열고 닫으면서 공간을 분리할 수 있다. 그 날의 강연에는 정선의 그림들이 한옥 내부의 흰 벽면에 투사되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그림 강연을 계기로 만난 체리암을 가꾸고 있는 기획자 팥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11년 전에 처음으로 만들었던 더 보기

  • 자전거를 타고

    아이가 강을 건넌다 이쪽에서 비 오고 저쪽에서 구름 걷힌다 빗방울 두꺼워 맞은 뺨 퉁퉁 붓는다 달리기에서부터 흐르기까지 봄 지나 봄 또는 철교 아이가 강을 한 번 더 건넌다 이쪽에서 차 굴러가고 저쪽에서 버스 쓸려 온다 바람 가늘어 맞은 뺨 펄펄 뛴다 흐르기 지나 떠가기까지봄 너머 봄또는 천둥 나는 아이의 자전거를 빼앗아강의 다리 밑으로 힘껏 밀쳤다 더 보기

  • 계동길 오후

    어느날 오후, 지인을 만나러 가면서 계동길을 산책하게 되었다. 서울에 살고 있지만 창덕궁 옆 동네를 걷는 잠깐의 시간 동안 ‘여행자’가 된다. 손뜨개질로 만든 옷가게, 여행 서점, 고양이를 테마로 하는 전시장, 카페, 분식집, 파스타집, 악세사리 가게, 기념품 매장, 아이스크림집. 각자의 주제와 색깔을 뽐내는 공간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면서 들뜬 마음을 갖는다. 작은 골목길로 우회하여 창덕궁 방향으로 가까워지면 아주 더 보기

  • 체리암 첫 시 낭독회

    체리암이 시적인 공간이 되길 희망한지 1년이 지나 드디어 [젊은 시인들의 동고동락]의 첫 낭독회를 장대성 시인이 멋지게 시작하였으니 우리에게 뜻깊은 봄의 행사였다. 댄디한 차림의 장시인을 아홉 분의 문인과 시인을 친구로 둔 군인 한 분이 둘러싸고 앉았고, 정각 7시가 되자 장시인이 <복원>부터 낭독했다. 이어 낭독한 <새의 낙법>, <밤이 오겠지>는 이미 발표한 시이고 미발표 시들도 한 꾸러미 소개했다. 더 보기

  • 장대성의 시 낭독회

    장대성 시인의 시 낭독회를 김웅기(해경) 평론가와 함께 봄날 밤에 진행했다. 말이 주는 울림과 힘, 고뇌와 희망이 퍼져나가는 것을 같이 느꼈다. 낭독한 시는 장대성 시인의 <복원>, <새의 낙법>, <밤이 오겠지>, <겨울밤>, <있잖아>, <건강과 안정> 그리고 김수영의 <봄밤>,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이며, 김웅기 평론가의 산문 <나무처럼>, <작별>도 함께 했다. 그 중 장대성의 시 2편을 소개한다. 복원 쓰다 만 더 보기

  • 구름바위

    구름이 바위를 보듬다가 바위가 구름을 머금으면 가볍고 무거움은 한 끗 차이 진지해진 구름은 온 힘을 다해 단단해지고 바위가 폭소를 터뜨리는 날 옹골진 몸이 흩어져 버리겠지 가뿐함과 무게감 사이 머물다가 떠나가는 곳 구름이 바위되어 살 수 있고 바위가 구름되어 사라진다 여기, 누구나 속마음 뿌리가 드러난다 작은 집을 바위 삼아 마음속 구름을 잡아본다 구름의 뿌리가 바위라 했지 더 보기

  • 아니리

    1999년 나를 업고 마을을 쏘다니던 당신이 돌부리도 없이 땅바닥에 엎어진 날부터 죽은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 밤이면 동그랗게 솟은 것들이 전부 무덤으로 보이지 내가 사는 곳에는 언덕이 많고 길고양이가 지붕 밑을 나돌고 가끔 함을 파는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찹쌀떡이 쫀득하다는 이유로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은 없어 눈이 푹푹 나리는 이 밤에 취객이 골목에서 흥얼거리는 노래가 당나귀도 나타샤도 더 보기

  • 나무문을 열고 들어간 작은 세계, 체리암을 처음 본 순간 몸과 마음 깊이 스며들어있던 시골 어느 깊은 산속에서 뛰어놀던 어릴적 모습이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짧게도 길게도 머물던 시골은 그 시절 계절이 담긴 무언가에 늘 담겨있었어요. 귀하게 여기는 마을을 담아내던 그곳의 기억 조각들을한데 모아 만든 나만의 작은 나무함(函)들을 체리암에서 선보입니다. 한옥 지붕 아래겨울 끝자락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