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암이 시적인 공간이 되길 희망한지 1년이 지나 드디어 [젊은 시인들의 동고동락]의 첫 낭독회를 장대성 시인이 멋지게 시작하였으니 우리에게 뜻깊은 봄의 행사였다. 댄디한 차림의 장시인을 아홉 분의 문인과 시인을 친구로 둔 군인 한 분이 둘러싸고 앉았고, 정각 7시가 되자 장시인이 <복원>부터 낭독했다. 이어 낭독한 <새의 낙법>, <밤이 오겠지>는 이미 발표한 시이고 미발표 시들도 한 꾸러미 소개했다.

<복원>에 등장하는 올리브나무의 꽃말이 평화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장시인이 키우던 올리브나무가 본가에 다녀오니 죽어보였는데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계속 물을 주었더니 한참 나중에 다시 새순이 돋아났다고 했다. 시인더러 포기하지 말라고 메세지를 주는 것 같았다. 학부생일 때 교수님으로부터 시가 “말이 많다”는 평을 듣고 한동안 시작을 못하고 있다가 다시 ‘복원’되어 “내 상태로 돌아오는 일”을 염원하며 쓴 시라고 했다.
<새의 낙법>은 체리지기들의 시 번역 모음집에 영어로도 소개한다. 장시인의 시작 세계에 새가 자주 등장하는데 어린 시절의 뚜렷한 기억이 각인되어 있다고 한다. 비가 오는 날, 새가 한 마리 차에 치어 누워 있었는데 새끼 같아보였다. 집에 데려와 며칠 돌봤는데 어른들은 새끼가 아니라고 했고 결국 새가 죽었다. 자유로와 보이는 새가 막상 걸을 때는 사람이 더 자유롭지 않나 하는 생각이 교차했다고 한다.
<밤이 오겠지>에는 마을과 마당이 등장하는데 갈수록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되어가는 이 사회에 대해 공동체, 그리고 최소한의 공간으로도 ‘우리’가 될 수 있음을, 끈끈한 연대의 크기를 키워볼 수 있음을 노래한다. 2023년 1월의 호주에서 난 대형 산불을 보고 밤에도 화염 때문에 환하지만 슬픔의 “그 축축함을 부채로 부쳐 마당이라도 식게 만들겠다고요”라며 그래도 “밤이 오겠죠”라고 작은 희망을 품어본다. 어떤 이는 이 시를 읽고 “슬픔이 산불처럼 퍼진다”고 하였단다. 이 시도 역시 새가 등장한다.
<있잖아>에서 주인공이 꿈 즉 구조가 없는 세계 속 등장하는 인물이 되어본다.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거짓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뒤척이고 있구나 꿈의 바깥에서”라는 싯구에서 보듯이 꿈의 안팎에서 꿈의 주체가 사라지고 나서의 황량함을 상상해봤다고 한다. 시인이 유아시절에 할아버지댁에서 살았는데 대나무숲이 있는 집이었다. 꿈속에서 꽃 피우기 힘들다던 대나무가 그 숲에서 한가득 꽃을 피우고 죽음이 다가온다. 이 시에는 화살나무도 등장하는데 그 꽃말이 위험한 장난임에 착안하여 꿈 공간에 어울리는 모양과 뜻을 살렸다.
맨 마지막에 낭독한 <건강과 안정>에서 대파의 생명력이 주요 모티프이다. 개인적으로도 지인의 죽음을 경험하였고 작년말 무안 항공기 참사를 겪고 나니 잘려나가도 재생되는 대파의 힘이 절실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뿌리가 있다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장시인의 낭독 사이 사이에 짦은 평을 해준 김웅기(해경) 평론가도 본인이 쓴 산문을 두 편 소개했다. <나무처럼>과 <작별>은 산문집 ‘뼈가 자라는 여름'(김해경, 결, 2023)에 수록되어 있다.
나무처럼
나무는 오래된 흙을 붙잡고 아등바등 살았다. 노을이 지고 있었고 나도 어느 정도 답을 정해둔 참이었다. 이제 그렇게만 하면 된다고 믿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벌써 이룬 것 같이 기뻐서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고 싶었다.
나 이제 살 거야. 잘 살 거야.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럼 전화를 받은 이는 그래 그럴 거야, 하고 분명하게 말해줄 테지.
덩굴 숲과 터널을 지나 한적한 정거장으로 기차는 들어선다. 손이 무거운 여객 한둘이 내려서고 올라탄다. 창밖으로 노을의 긴 여운에 밟히는 그림자들을 훔쳐보면서 나는 또 생각했다. 내가 내려서야 할 곳에 대해. 생각에 잠기는 동안 슬그머니 기차가 정거장을 통과한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여린 얼굴을 발견한다. 상념에 갇힌 불안의 얼굴. 미세하게 떨고 있는 미래의 얼굴. 헤어진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내 얼굴. 늘 무언가를 반추하며 산다는 건 힘든 일이다. 어둠 속에서 결단을 내리는 일이다. 그럼에도 헤아리고 싶었다. 기차는 끝없이 통과하고 나는 끝없이 도망칠 기회를 놓친다. 그러나 모르겠다. 시간이 다 되어 나도 여느 여객들처럼 내려섰을 땐, 여기가 정답인지 오답인지, 이젠 또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으니까. 그저 빈 손을 든 채 흔들리고 있었으니까.“늘 무언가를 반추하며 산다는 건 힘든 일이다.” 요즘 어지러운 정세 속에 우리 모두 머릿속이 어지러울 정도로 걱정하며 반추하며 살고 있으니 이 대목이 특히 와닿는다.
낭독회의 후반부는 이 봄밤에 (제목만) 어울리는 시가 나왔다: 김수영의 <봄밤>
봄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 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아무래도 현재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국민으로서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와 “절제여”라는 싯구가 마음을 다독이는 역할을 이 봄밤에 해줬다. 우리 체리암의 위치 자체가 바로 안국역에서 10여분 걸어올라온 곳이라 재판소 앞 시위대 소리가 여실히 들리는 날이었다. 젊은 시인들의 고매한 동고동락 덕분에 잠시라도 현실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고, 그 여운은 오래갔다. <봄밤>에 대한 기사(신형철의 글)도 함께 보며 마음에 새기면 좋겠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35755.html
마지막에는 역시 신형철의 번역본으로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원제: Wild Geese>를 낭독했다.
기러기
착한 사람이 될 필요 없어요.
사막을 가로지르는 백 마일의 길을
무릎으로 기어가며 참회할 필요도 없어요.
그저 당신 몸의 부드러운 동물이 사랑하는 것을 계속 사랑하게 두어요.
절망에 대해 말해보세요. 당신의 절망을, 그러면 나의 절망을 말해줄게요.
그러는 동안 세상은 돌아가죠.
그러는 동안 태양과 맑은 조약돌 같은 빗방울은
풍경을 가로질러나아가요.
넓은 초원과 깊은 나무들을 넘고
산과 강을 넘어서.
그러는 동안 맑고 푸른 하늘 높은 곳에서
기러기들은 다시 집을 향해 날아갑니다.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당신의 상상력에 자기를 내맡기고
기러기처럼 그대에게 소리쳐요, 격하고 또 뜨겁게―
세상 만물이 이루는 가족 속에서
그대의 자리를 되풀이 알려주며.
밑에서 5 번째 행부터 원문은
Whoever you are, no matter how lonely,
the world offers itself to your imagination,
calls to you like the wild geese, harsh and exciting
인데 나는 “격하고 또 뜨겁게” 보다 “거칠면서도 힘차게”라고 번역하고 싶다.
신형철의 설명은 기사 참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2552.html
체리암에서는 생태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시를 좋아한다고 처음 만났을 때 얘기했더니 아주 어울리는 시를 들고 나오신 장시인에게 여러모로 고마운 밤. 또한 곰에게 시 낭송의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어 흥미로왔다. 장대성의 시 <겨울밤>의 낭송을 자원한 곰은 다양한 차분한 톤을 구사하며 비장미를 살렸다. 김 평론가로부터는 칭찬까지 들었다. 서산의 전국시낭송대회 참가자들보다도 잘 한다고.
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