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좋은 생각 품고
머물다가 
떠나가는 곳

기획자는 많이 읽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엮으며 만나야 한다. 5월에는 봇물 터진 공연들 여럿 챙겨보기로 결정하고(황당한 스케줄이 되어버림) 아울러 감상평/일기 형식의 메모장도 적어보기로 했다. 팥은 평생 공연을 꽤나 많이 봤으나 그 시간 온전히 즐기고 느꼈으면 됐다, 라고만 여기고 일기장에 한 줄 평 정도만 남겼었다. 일기 자체도 안 쓴 적도 많고. 그래서 한 번도 공연이 어땠는지 본격적으로 적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젠 무언가 끼적여보자. 요새 이 적는 행위 자체도 풍류를 늘려 즐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5월1일 4시 GS아트센터> 스페인 안무가 Marcos Morau의 Afanador 무용, 혼자 관람

<아파나도르>에서는 플라멩코의 기본값 아니 기본색 제거! 105분간 검정색으로 가득찬 기괴-시크 미학. 모델의 스튜디오 사진촬영 닮은 연출, 플래쉬 과다. 시작부터 발과 정강이만 보이는 무대, 나란히 선 수많은 발들의 현란한 움직임. 시선 좁혀짐이 인상적. 검정주름치마 입은 남자무용수들. 새 모티프. 힘 겨루기 게임. 집단의 폭력으로 한 명을 찍어누름. 빛과 그림자 그러나 주로 black-out. 무대의상이 엄청 멋졌을 텐데 천의 주름구조와 입체 재단이 온통 검정인 무대연출에 가려 하나도 안보여 안타까움. (이렇게 끝까지 올블랙 감수성은 나랑 안 맞아!) 옆에 앉은 아저씨는 R석 앉아서 공연의 반을 졸고있네. (이건 평소 곰의 역할인데…오늘은 팥 혼자 관람) 배팬티 차림 날렵한 몸매의 남자무용수들과 스포츠브라 스타일에 전통 플라멩코 치마 모양을 입은 여자무용수들. 특유의 전통 춤선(절도, 절제)은 다 살리되 빨강색 요소는 모조리 제거. 남성 솔로의 강렬한 모습은 그림자까지 흰 스크린에 담아 한꺼번에 이중 감상.

아파나도르 커튼콜

엄마와 7년전? 신사동에서 김태훈 선생님으로부터 플라멩코 수업 듣던 때가 그립군. 배워본 경험 안 해본 관람객들은 상상을 못하겠지, 얼마나 상체를 꼿꼿하게 한 채 하체가 난리나게 하는 기술이 어려운지. 물론 난 아무리 힘줘도 상체가 터덜터덜 거려서 지적받았었다.

아파나도르의 남녀 무용수가 몸이 하나가 되어 다소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사지로 걷는 동물 행세하는 장면은 잊혀지지 않을 듯.(플라멩코와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그러다 또 갑자기 라푼젤 동화 모티프, 치렁치렁 긴 머리가 무대 한 중간에 수직 기둥을 만들고. 요즘 무용공연에 흔히 동원되는 비디오아트는 좀 더 짧았으면 좋았겠다.(무언가 무용수가 쉬는 시간 같기도 함.) 기발함에 재미가 대단하다가 너무 시커먼 무대에 졸리다가 마지막 플라멩코 숄을 날개삼아 두르고 춤추는 새 같은 무용수 강렬해서 눈을 또렷이 뜨게 된다. 그러나 끝에 서두와 대칭을 이루기 위한 장치겠지만 플래쉬 또 터뜨리는 건 좀(아니, 많이) 지루해서 눈 감았다.(선글래스 쓸 정도로 눈부신데 비오는 날이라 안 쓰고와 후회막심)

  • 5월3일 3시, 5시 남산국악당> 상자루(3인조 국악밴드), 이나연(피리) 국악공연, 곰과 함께 관람
  • 2025 남산마당페스타, 젊은국악 단장과 함께 (모두 무료공연)

상자루: 스스로를 한옥이 잘 어울리는 남자들이라고 소개했다. 한옥 문을 다 열어젖힌 무대에 각 칸에 연주자 한 명씩 서있었다. 아쟁이 이렇게 힘이 넘치는 악기인지 몰랐다. 요새는 전통적으로 앉아서 연주하던 악기도 서서 하니 마치 톱으로 나무를 써는 동작으로 듬직한 외모의 남성훈 연주자가 아쟁을 담당. 구구절절 표현을 잘 살리는 느낌. 신나는 몸짓과 함께 장구와 꽹과리를 맡은 권효창과 내 시야에서는 잘 안보인 전기기타를 치는 조성윤 작곡가, 이렇게 세 명이 어떤 때는 락음악 비슷해지는 곡도 선보였다. 후반부에 하얀 몽글몽글한 순두부같이 생긴 고깔을 쓰고 경상도 농악 가락을 이용해 작곡한 ‘경북스윙’과 ‘지신RV’가 특히 신났다. 아.하~지신아! 지신지신을 누르자. 지신지신을 누르소. 아~흐아~
*상자루 인터뷰 https://blog.naver.com/arko_korea/223750826912
*지신밟기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4281

꽤 쌀쌀한 5월초(초겨울 날씨)의 야외무대를 열정적인 공연으로 달궈줌. 그 다음 공연 시작하기 전에 한 시간이 남아 남산 한옥마을 내 훌륭한 정원을 산책하고 돌아와서 5시 공연을 또 봄. 다들 제공되는 막걸리를 한 잔씩 걸치고 있는 분위기. 해남문화관광재단의 행사이므로 해남막걸리. 아쉬운 건 역시 플라스틱 한 가득 선물(과자와 막걸리를 비닐봉지에 담은 꾸러미)을 준다. 막걸리를 좋아하지만 조용한 반항으로 체리지기들은 선물봉지를 받지 않았다. 이젠 포장이 어떤지가 더 중요하니까.

이나연: 음악선생님의 면모가 돋보이는 연주자. 한 곡, 한 곡 작곡의 배경이야기 설명해주니 좋았다. 1) ‘바람의 아우성’은 피리를 톺아보는 시간. 피리, 태평소처럼 대나무 악기의 소리를 여러 방향으로 꾸며본 곡. 끝나고 일어서며 마이크에 머리를 부딪힌 연주자가 다행히 크게 당황하진 않았다. 2) ‘눈’은 서정적이며 아름다운 독주. 처음엔 연주자 숨소리도 넣어 들려줌. 나풀거리며 내리는 눈 형상화. 이 곡 연주하는 순간 하늘거리는 천막 사이로 제비 한 쌍이 날아가는 환상적인 모습 보게 됨. 소복소복 오다가 점점 눈발이 굵어지는 절정을 향하는 곡조. 3)’골든’부터는 합주. 이하나의 기타와 이상경의 타악과 함께. 이 제목은 서(소리 내는 핵심 부분)과 관대(대나무 몸통)로 이루어진 피리 몸체의 구성에서 영감받음. 서는 구리선으로 감겨져 있는데 여기서 석양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곡을 듣다보니 석양보다는 희망찬 느낌의 해돋이 같은데?! 영화음악으로 쓰면 참 좋을 곡. 주인공이 차속에서 창문밖을 보며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들 하염없이 바라보는 장면. 4)’시간 레시피’는 시간을 음식에 비유한 노래, 이나연 피리 연주자가 노래까지 감미롭게 잘 부른다. “소소한 하루에 삶의 무게를 더 해 소중한 마음을 너의 시간에 담아” “한껏 부푼 마음을 조각조각 나누어 고소하고 달콤하게 구워내고…별가루를 솔솔 뿌리며” “때로는 씁슬한 시간을 만들어~봐!” 중간중간에 기분좋아지는 선율을 “니나노~”에 담아냈다. 마지막 5) 쨈(다같이 즉흥곡 연주하는 Jam session)에서는 3명의 시너지 발휘. 이나연이 태평소를 색소폰처럼 연주해서 멋졌다. 세 연주자가 5월초 날씨가 이렇게 추울지 모르고 하늘색과 흰색의 변주로 산뜻하게 맞춰온 모습이 너무 추워보였지만 그들은 신나보여 다행. 낮의 야외공연이라 이렇게 받아 적기도 할 수 있어서 메모장이 풍부해졌다.

  • 5월4일 3시 국립극장> 스페인 희곡작가/연출가/배우 Angélica Liddell의 Liebestod. El olor a sangre no se me quita de los ojos. Juan Belmonte(사랑의 죽음. 피비린내가 눈에서 떠나지 않아. 후안 벨몬테) 연극, 지연과 함께 관람

유럽 연극계에서 새로운 연극의 역사를 쓰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예술가 리델의 첫 번째 내한 작품이라고 했다. 앞으로 보는 모든 공연이 이보단 가벼울 듯. 연극 예매하자마자 문자가 왔다. 자해 장면과 고양이 출연 장면이 있음을 미리 알린다고. 큰 둔기로 맞는 기분이 드는 기분나쁜 소음과 함께 검은 고양이가 등장했는데 (이쁘게 생기긴 했지만) 큰 소음에 동물을 노출시킬 거면 굳이 등장시켜야하나 싶었다. 자해는 연출이겠지 싶었는데 아.니.고. 실제로 면도칼을 대어 정강이와 손등에 대어 피를 흘리는 주인공. 빵 한 조각을 뜯어 그 피를 찍어 먹기도 했다. (제목에 ‘피비린내’가 나오는 대목은 영국 화가 Francis Bacon 대담집 제목에서 차용한 것이라 했고 이는 베이컨이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 아이스킬로스의 한 시행을 변형해 자주 사용했다고 함. 아무래도 투우의 의식에서 영감을 받은 연극이니 피가 빠질 수 없겠지.)

*Bacon inspired by Aeschylus’ Greek tragedies (to a great degree the quote “the reek of human blood smiles out at me”) https://www.thebigship.org/post/francis-bacon-horrors-of-humanity
*The Estate of Francis Bacon https://www.francis-bacon.com/art/influence-inspiration/influence/aeschylus

어떤 ‘이야기’ 구조가 빠진 연극으로 2시간을 거의 혼자 연기한 배우(안헬리카)가 고통스러운 독백을 어마어마하게 이어간다. 이 주인공은 계속 고뇌에 찬 말들을 뱉어냈다. 주로는 광인같은 모습으로, 가끔은 실성한 실연당한 사람의 모습으로. 한 인생의 고뇌가 아니라 마치 지구의 모든 고뇌를 안고 있는 듯한 스케일이 느껴질 정도. 사회에 대한 분노와 실망을 표출하는 이 모습에서 관객에게 호소한다기보다 그저 솔직함의 극치가 돋보였다. 무대 위에서 안헬리카는 정말 못하는 소리가 없다. (여러 톤의 소리도 낸다.) 누구든지 사실 하고싶은 얘기를 이런 형식을 빌어 하면 되지만! 아무도 이만큼의 용기는 없겠다 싶다. 전시설명글 보니 “이렇게 아무 말이나 쏟아 내는 것 같은 안헬리카의 독백은 말의 힘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연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대사가, 말이, 부조리하고 불합리하고 타락한 세상을 바꾸는 데에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헬리카 본인은 작가도 극작가도 아니라고, 그냥 창작자일 뿐이라고 밝힌다.”(리플렛에서 김재선의 글 중 발췌)

+극 중에 루마니아 철학자 Emil Cioran(에밀 시오랑)과 프랑스 시인 Arthur Rimbaud(아르튀르 랭보)의 글을 인용하는데 어느 것인지는 까먹었다.
*시오랑 글 모음 https://m.blog.naver.com/herdkmh/220270007423
+랭보도 언급되니 최근에 읽은 김해경의 산문 ‘연금술?’의 문구를 인용해야겠다.

예술을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구나. 이 사람은 무엇 때문에 이토록 힘들어 했을까. 아니 그냥 조금은 쉽게 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죽음을 자꾸 입에 담으니까 일찍 죽은 거야. 랭보의 시집과 나무위키를 번갈아 읽으면서, 나는 랭보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어떤 예술도 본인이 죽으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중략)

전화를 끊고 무심히 바닥을 보는데 발밑으로 노란 꽃들이 가득했다. 귓가세 어떤 시가 맴도는 것 같았다. 나는 가리라, 멀리, 가리라,* 자꾸만 그러는 것 같았다.

*아르튀르 랭보, ‘감각’

김해경의 산문집 <뼈가 자라는 여름>, pp.45-47 일부 발췌

*랭보의 시 https://m.blog.naver.com/betmanloving/222227217066

다시 공연으로 돌아오면,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사랑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아, 소와 투우사(전설적 투우사 벨몬테에 대한 오마쥬)의 관계로 투영하는 숙명적인 사랑과 죽음 듀엣 후반부는 흐느끼는 주인공에 대해 팥의 인내심이 떨어져 조금 지루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따라갈 수 있는 어떤 이야기의 틀은 그닥 없다.(너무 혼자 다 하신다!) 그러다 갑자기 마사이 전통 복장(내가 입고 싶은 이쁜 빨강 체크무늬!)을 한 흑인의 등장이 새롭긴 하나 영문을 모르겠다.(투우사가 괴로워하다가 아프리카로 가고싶다~ 하니까 등장했던 것 같은데 참으로 극이라는 공연 형식은 아무 장치가 다 가능하구나.) 투우사 이졸데와 마사이족 청년이 손을 잡고 어색하지만 조금은 경쾌한 춤을 추는 모습은 그나마 상상 속의 구원인가. 아무튼 이런 공연예술의 “영문을 모르겠음” 그 자체를 즐긴다. 현실에서는 설명을 요하는 일이 무대 위에서는 각자의 상상에 맡겨지니 엉뚱할수록 기억에 남는다. 팥은 어차피 투우의 문화를 이해하기엔 그 잔인성 때문에 이해를 거부하는 편이라 안헬리카가 제시하는 ‘영적인 수행’이 그런 면에서는 썩 와닿지 않았다. 그래도 이젠 멀리 안가고 서울에 앉아 유럽의 화제거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생각한다. 호기심 충족!

*국립극장 보도자료 https://www.ntok.go.kr/ntok/na/ntt/selectNttInfo.do?mi=21056&bbsId=12034&nttSn=1001110

지연과 극이 끝나자마자 광고지에 실린 Les Echos(프. 경제일간지 레제코)의 평 “안헬리카 리델은 더 이상 연극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연극 그 자체다”가 연극을 보고나니 너무나 이해된다고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의 장르 탄생이다. 함께 서교동 URT 비건식당으로 가는 길에 Argo Boni(아르고보니 즉, 알고보니?! 귀여운 이름ㅎㅎ) 들러 말차라떼 마시는데 지연이 반갑게도 내가 가고싶었던 전시에서 산 엽서(인도 수제 종이 위 전효진 그림과 우표)에 좋은 싯구를 적어 선물로 줬다. (팥이 5월에 기획한 김수영 시 수업에 대한 텔레파시가 전달되었나보다!) 요즘 여기저기서 확실히 이런 아날로그 감수성 돋는 분위기, 참 좋다. 다시 아까 본 공연 얘기를 하면서 지연이 솔직히 왜 팔과 다리가 하나씩 없는 장애인 배우를 꼭 출연시켜야 했는가 그 맥락을 모르겠다고 했다. 어쨋든 우린 유알티의 훌륭한 요리들을 즐기며 다음엔 좀 가벼운 걸 보러가자며 웃었다.

고마워요, 지연!

  • 5월5일 5시 남산국악당> 춤선캡(최종인 안무가) 무용, 곰과 함께 관람

바로 이틀 전에 같은 야외마당에서 국악공연을 봤는데 팥과 곰이 출근하듯이 또 필동으로 와서 이번엔 무용 관람. 엉뚱함의 미학을 또 보여주는 최종인의 ‘막춤’은 시끄러운 장터 자체가 뮤즈인 듯. 우선 본인이 먼저 혼자 등장할 때 두꺼운 고글을 쓰고 나와 모든 촬영은 법적으로 환영한다는 녹음된 멘트로 사람들 웃기며 광대처럼 시선을 끌다가 무용사조와 상관없는 원초적인 춤을 지향한다는 소개를 한다. 그의 안무는 본인의 턱살과 볼살이 떨리는 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아리아리~쓰리쓰리~에 맞춰 익살스럽게 막춤을 춘다하지만 각양각색의 몸빼를 입고나온 나머지 다섯 여성 무용수들과 엄청나게 조율되어 딱딱 맞는 춤선을 선보인다. 시골 서커스, 복고시대가 테마일 텐데 그에 맞춰 시끌벅적 노래들은 내게는 좀 힘들었다.(너무 억지로 흥에 겨운 느낌?) 곰에게 저런 걸 무슨 장르라 하더라? 물었더니 ‘각설이타령’ 아니면 ‘품바’ 아니야?라며 내가 평소에 잊고 있던 단어들을 상기시켜 줬다. 찾아보니 음성품바축제도 있네. 옛날에 장돌뱅이들이 사실 진정한 희극인들이었겠다. 이 현대판 장돌뱅이 그룹은 그야말로 6개의 에너지볼이었다. 메들리에 맞춰 쉼이 없이 통통 튀며 힘들어보이는 동작들을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이어가는데 정말 안무가의 말처럼 ‘막춤에 심취’해 있는 놀라운 지경이구나 싶었다.

*얼씨구절씨구 타령 https://www.jamill.kr/news/articleView.html?idxno=237588

그 다음 5월 중순에 완전 다른 스타일의 무용 공연 볼 예정이다…(메모장2)

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