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좋은 생각 품고
머물다가 
떠나가는 곳

ㅊㄹㅇ 시선


  • 용융

    봄어깨에 두른 외투를 떨어뜨린 사람 여름민소매 원피스를 고르는 사람 그날 다 봤다 고가 아래두껍게 껴입고 사는길사람 기지개 켜고아침에 몇 번솜주먹으로 내리치다 만 겨드랑이 생각이 났다 너와 나의 림프절우리들의 대관절 길길이 길이길이날뛰며 꺼지는 법 없이 오늘도 사람 많은 길을 걸었다 유럽 같아?CD 있어요?신이 한국인이야? 사진 찍어주던 사람에게멀리 농성 소리가까이 연주 마친 사람에게 그렇다고 믿고 있을 사람에게 더 보기

  • 반투명

    오월이면 초록은 여름이 오는 길을 닦고 바람을 따라 흔들린다 주저 없이 새들은 봄을 내려놓고 밤 없는 여름을 향해 날아간다 돌아올 거야 마른 초록과 깃털로 만든 둥지어린새도 함께 돌아올 거야내가 좋아하는 너의 믿음 그 믿음에 발을 담그고어린새의 날개깃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코우- 리, 코우- 리흉내 내 보다가 새의 소리도 나의 소리도 너의 소리도 아닌 소리가희미하게 자라난다 비가 더 보기

  • 자전거를 타고

    아이가 강을 건넌다 이쪽에서 비 오고 저쪽에서 구름 걷힌다 빗방울 두꺼워 맞은 뺨 퉁퉁 붓는다 달리기에서부터 흐르기까지 봄 지나 봄 또는 철교 아이가 강을 한 번 더 건넌다 이쪽에서 차 굴러가고 저쪽에서 버스 쓸려 온다 바람 가늘어 맞은 뺨 펄펄 뛴다 흐르기 지나 떠가기까지봄 너머 봄또는 천둥 나는 아이의 자전거를 빼앗아강의 다리 밑으로 힘껏 밀쳤다 더 보기

  • 구름바위

    구름이 바위를 보듬다가 바위가 구름을 머금으면 가볍고 무거움은 한 끗 차이 진지해진 구름은 온 힘을 다해 단단해지고 바위가 폭소를 터뜨리는 날 옹골진 몸이 흩어져 버리겠지 가뿐함과 무게감 사이 머물다가 떠나가는 곳 구름이 바위되어 살 수 있고 바위가 구름되어 사라진다 여기, 누구나 속마음 뿌리가 드러난다 작은 집을 바위 삼아 마음속 구름을 잡아본다 구름의 뿌리가 바위라 했지 더 보기

  • 아니리

    1999년 나를 업고 마을을 쏘다니던 당신이 돌부리도 없이 땅바닥에 엎어진 날부터 죽은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 밤이면 동그랗게 솟은 것들이 전부 무덤으로 보이지 내가 사는 곳에는 언덕이 많고 길고양이가 지붕 밑을 나돌고 가끔 함을 파는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찹쌀떡이 쫀득하다는 이유로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은 없어 눈이 푹푹 나리는 이 밤에 취객이 골목에서 흥얼거리는 노래가 당나귀도 나타샤도 더 보기

  • 반사광

    식탁 위에 사과 우리가 함께하던 아침 내가 베어 물었지 향과 함께 일어나는 분진 그대로 얼어붙는 소리 지난밤엔 눈이 많이 내렸어 나는 밤새 열이 올랐고 창밖으로 빗질하는 소리 새들이 단숨에 날아오르는 몸짓 앉을 자리를 찾는 새들의 선회와 베어 물 자리를 찾는 손짓이 서로 닮았어 내 손안에 붉은 사과 노란 단면에서 보이는 어느 가을 함께 걸었던 오솔길과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