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입니다. 시작은 매번 설렘과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광주에서 나고 자라 20년을 살다가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천안에 처음 올라왔을 때처럼, 텅 빈 방에서 나라는 사람의 허공을 처음 감지했을 때처럼, 사랑은 사람을 살리는 것만이 아니라 죽일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처럼, 얼굴 한 번 본 일이 없는 사람이 내가 쓰는 시가 좋다며 웃으며 말을 걸어올 때처럼. 내게 시작은 기쁨보다는 불안에 가깝습니다. 하나의 증상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잘 시작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잘 끝내는 사람이기를 언제나 소망합니다. 내게 도착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나면 미약하게라도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시작하기에 앞서 선언해 보는 것입니다.
나는 끝장을 볼 생각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단어의 뜻을 알기 위해 검색창에 ‘기쁨’을 적어봅니다. 그러니까 나의 지난날을 회고해 보자면, 기쁨을 알지 못하는 채로 흘러온 것 같습니다. 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선수가 메달을 획득하거나 응원하는 야구팀이 한국 시리즈를 우승했을 때, 두 손을 하늘 위로 번쩍 들고 소리를 지르며 옆 사람을 부둥켜안은 것이 내가 떠올려볼 수 있는 기쁨이라는 감정의 거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내가 감지한 감정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기쁜 일이다’라는 사람들의 말 아래. 아, 사람들이 서로를 껴안는 것이 기쁨의 한 종류이구나, 누군가를 이기는 것 역시 기쁜 일이구나. 어쩌면 기쁨은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행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검색창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이라고요.
나는 먹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욕심이 많아서인지 그릇이 작아서인지, 남보다 항상 많이 먹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배를 가득 채우고 나면 충족했다는 마음보다는 그저 속이 더부룩해서 한동안 소화 시키는 일에 힘을 쏟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음을 얻기 위해, 나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했던 말과 행동들이 돌고 돌아 내 마음에 체기를 돌게 했습니다. 손을 따고 몸에서 검은 피를 빼내듯 몇 번의 우는 날을 지나고 나서야 나는 다시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두고 보니 내게 기쁨은 충족된 상태가 아니라 충족하기 전의 허기를 느끼는 상태가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처음 집어 먹은 음식의 감칠맛이 그렇듯이
처음 알게 된 당신이라는 한 사람의 고유함이 그렇듯이
혼자 버드나무 우거진 하천을 걸었습니다. 오월의 초저녁에는 걷는 사람이 많습니다. 걸으면서 웃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뻐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기쁘다는 말을 따라 나도 하천의 물결을 보며 괜한 웃음을 지어봅니다. 겨울과 봄을 지나오면서 나는 긴 슬픔에 갇혀 지냈습니다. 매일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죽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하고 밥을 먹었습니다. 먼 사람에게 안부를 묻고 싶어질 때마다 시를 썼습니다. 슬픔과 아픔의 시간 속에서 쓴 시를 보며 사람들은 ‘좋다’ 말해주었습니다. 나는 그때 잠깐 기뻤습니다. 그리고 슬픔과 아픔을 두고 좋다고 말해야만 하는 우리의 운명이 조금 야속했습니다. 그러나 시를 쓰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큰 기쁨입니다. 하천의 물살을 가늠하며 떠내려가는 것들의 안위를 생각해 보는 사람이 되어볼 수 있다는 것 역시 내게는 기쁜 일입니다. 좋은 일에 웃을 수 있는 것보다 슬픈 일에 울 수 있는 게 차라리 기쁨입니다. 슬픔과 아픔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내내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가지는 일.
오늘 당신은 기쁜 사람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기쁨에는 자주 ‘그래도’라는 부사가 붙습니다. 나는 기쁨이 과정보다는 결과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넘어서는 것입니다. 당신의 지난한 하루, 하루 속에서 수없이 들었던 안 좋은 생각들, 감당할 수 없겠다 여겨지는 생활의 면면들. 이때 ‘내일’이라는 시간은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깝겠지만, 절망 속에서 무엇에도 의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당신에게는 당신이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잘 있지는 않습니다. 나는 ‘그래도’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미룬 채 바다를 보러 다녀왔고, 삼일 밤을 지새우며 술을 마시고 나의 생활을 토로했습니다. 그것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에서 나의 자리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있는 것입니다. 나의 좁은 방 안에서,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한 공원에서, 슬픔을 꺼내두는 사람의 맞은편에서, 그리고 당신으로부터 아주 먼 곳에서.
있다는 것, 내 기쁨의 총체는 그것입니다.
어디에서는 당신도 있을 것이라는 예감. 이것 역시 기쁨일 겁니다.
어제는 처음으로 당신이 미웠어요.
마냥 기쁘지 않은 나의 기쁨을 들여다보는 당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밉다고 말해봅니다. 그러니 당신도 나를 미워하세요. 나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계속해서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기쁨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도 사는 사람. 그리고 그것은 당신만의 기쁨이 아닐 거예요.

오월의 끝과 초여름의 맨 앞에서
- 작가 장대성(글과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