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좋은 생각 품고
머물다가 
떠나가는 곳

나는 매년 지구의 날이 돌아올 때마다 숨이 턱 막힌다. 우리가 무심히 딛고 있는 이 땅과 우리가 마실 공기를 하염없이 내어주는 하늘을 우리 인간이 얼마나 해쳤길래 <지구의 날>까지 일부러 만들어 아픈 지구를 돌아보는 지경이 되었는가 한탄하게 된다. 이 날만큼은 ‘지구가 어떤 상태에 있나 생각해보자, 다른 때는 영 까먹고 살아도’라고 평소에는 무심하게 살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 자신과는 철저히 분리된 불우이웃 문제에 대한 다큐를 시청하는 듯한 태도도 살짝 엿보인다. 왜 지구의 날이 생겼는지 그 유래를 찾아보니 1969년 미국에서 원유 시추 작업 중에 발생한 대형 기름유출 사고 때문에 경각심을 더욱 일으키고자 지정하게 된 것이다.

이 날 내 주변에 어떤 일이 벌어지나 살펴보니 지구의 날을 맞이하여 22% 세일이라며 더욱 더 소비를 부추기는 행사도 여기저기 있고 또 불쌍한 지구를 생각하며 만든 케이크(흙을 코코아가루로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녹색 장식이 많이 달림)를 사먹으라며 소비자를 유혹하는 광고도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엄청난 플라스틱 투명 포장박스에 담긴 케이크였다. 참다못해 그 광고에 이건 너무 모순이지 않냐고 댓글로 불평한 적이 있다. 다행히(?) 그 상인은 자기 불찰이라며 다음부터는 포장에 더 신경쓰겠다고 답을 달아줬다.

이렇듯 요즘은 무언가를 사면 그 포장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커서 그냥 덜 사는 쪽으로 방향을 튼 지 꽤 된다. 블루베리를 좋아하나 그 두꺼운 플라스틱 곽을 보면 그냥 내려놓게 된다. 이젠 슈퍼에 장을 보러 갈 때는 집에서 모아둔 비닐을 챙겨서 가는 것은 기본이고, 새 비닐은 최대한 집에 들여놓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식당에 가면 의례 놓여져 있는 물티슈(미세플라스틱 덩어리)는 옆으로 치우고 쓰지 않는다. 지구의 날을 맞이하여, 생활 속에서 고쳐갈 수 있는 습관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보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최근 식목일에 어느 특별한 결혼식을 다녀왔다.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 앞에서 야외결혼식을 하는 사촌동생 부부를 축하하는 귀한 자리였다. 원래 이 부부는 작은 결혼식을 원했으나 아무래도 집안 어른들 의견으로 하객이 좀 많아졌는데 뷔페를 야외에 차리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청첩장을 보니 쓰레기 줄이기 운동 차원에서 각자 용기를 가져와달라는 부탁이 있어 신선했다. 우리는 기꺼이 우리의 식기와 텀블러를 챙겨갔다. 아마도 어르신들께는 전통적인 청첩장을 돌렸고 친구/비교적 젊은 하객에게 보내는 ‘혼인잔치’라는 제목의 온라인 초대장에 이런 문구가 쓰여져 있었으니 유연하게 환경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사진 박정인

일반식과 비건식으로 음식이 맛깔스럽게 차려져 있고 음료 쪽에 다회용 컵 그리고 종이 접시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처럼 자기 식기 가져온 하객은 자랑스럽게 꺼내어 혼인잔치의 주인공들이 원하는 환경운동에 동참했다. 500-600년 된 팽나무 어르신이 멋지게 굽어보고 있는 터에서 훌륭한 마음가짐으로 부부의 연을 맺는 자리에 환하게 웃을 수 있어 진심으로 흐뭇했다. 지구의 날 선언문은 인간이 환경 파괴와 자원 낭비로 인해 자연과 조화롭게 살던 전통적 가치가 파괴되고 있음을 경고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시민의 생활 문화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 Coldplay 내한공연 때도 일회용 생수병 반입금지 지침이 있었다. 사회가 느리게 바뀌고 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우리는 바로 자연과의 조화를 최대한 실천한 <팽나무 앞 혼인잔치>가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팥.

사진 박정인

*팽나무의 특별한 점을 다룬 기사 참조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53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