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에서 살 때는 잘 못 느끼다가 강원도 시골에 살게 되어 몸소 정원을 가꾸고 퇴비를 만들며 살아보니 여러 생각이 저절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땅의 진정한 주인에 대한 생각입니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새로 지은 집을 구경하는 뱀, 자귀나무 위에 명상하듯 바람에 일렁이는 이파리에 얌전히 앉아있는 개구리, 아늑한 곳에 찾아들어 가장 고귀한 모습으로 마지막 숨을 거둔 까치를 모두 우리 정원에서 만났습니다. 가끔 백로도 자신이 가장 우아한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시원스러운 날개짓을 훨훨 뽐내며 날아갑니다. 이웃 아저씨가 농사짓는 논이 황금색으로 물들어 갈 무렵 멋진 근육질의 허벅지를 자랑하며 논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뛰어가는 고라니도 봤는데 정말 훌륭한 장면이었습니다. 분명 농민은 고라니가 밉겠지만 인간의 이기적인 시각으로 동물을 퇴치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과연 옳을까 하는 의문도 점점 커졌습니다. 우리 산천에 함께 살아야 하는 동식물에 대한 깊은 애정이 더욱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우리집 바로 주변의 산이 마구 깎이고 산허리가 흉하게 드러나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꾀꼬리 한 쌍의 둥지가 다 파괴되었겠다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이젠 정말 땅을 사서라도 보호해야하나 이런 생각도 문득 들었지만 그럴 여유가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이때 알게된 야생신탁 프로젝트는 너무나 반갑고, 우리의 괴로운 마음을 그나마 달래주는 것입니다. 더 중요하게는 우리 모두가 이 땅의 주인이 누군지 더욱 진지하게 생각해보도록 하는 중요한 계기입니다. 우리는 이제 정원도‘가꾸는’ 것은 덜하고 ‘내버려 두는’ 편입니다. 그렇게 두니 생태계가 저절로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럿이 함께 뜻을 모아 시작하는 야생신탁의 첫 터는 비록 작을지라도 큰 기쁨과 더 큰 변화의 시작점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체리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