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뛰는 이유가 궁금해서 마련한 자리.

2025년4월12일 오후4시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 6분이 모였다.
다양한 나이와 직업군의 인생 이야기가 녹아있는, 달리기 속 치열하게 사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첫 번째 주자로 사랑방 이야기 모임을 시작해준 Y는 피아니스트. 마라톤 기록이 잘 나오기로 유명한 베를린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운동하기 좋은 환경에서 자연스레 뛰게 되었다. 10년 넘게 외국생활을 하다가 귀국 후 모든 면이 힘든 때, 운동브랜드들이 모집하는 하프마라톤의 광고를 보고 처음 시도. 40대가 시작하는 것은 주변에서 처음이었다. 준비할 때는 사람들과 매우 어색했는데 대회를 마치고 나서 다 친해지게 되었다. ‘동적인 명상’을 하다보면 runner’s high(뛰면서 느끼는 극도의 희열)도 경험하게 된다. 첫 마라톤은 춘천에서 시작했는데 대선배 pacemaker 두 분이 옆에서 “처음에 overpace하기 쉬우니 힘을 꼭 눌러놓고 비축하라고 코치하셨다. 12km 지점 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며 더 이상 같이 가주지 않길래 춘천댐이 딱 나타나는 곳에서 혼자 기가막혔지만 어찌하여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처음엔 완주만 해도 기쁘지만 점점 기록을 생각하게 되니 몸이 다치게 된다. 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다음 차례인 SH은 조깅맨이라는 별명으로 SNS에서 꽤 유명한 분. 고통을 잊을 정도로 기쁜 적은 없다고 말을 꺼냈다. 별로 달리기랑 관련 없이 살다가 군대가서 ‘재능’ 발견. 그러다가 호주의 시골에서 일할 때(2018) 5km 대회가 있었는데 갑자기 1등을 하게 되어 스스로 놀랬다. 코로나 전에 체리암에서 하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 모임을 하는 회사의 매니저로 일하다가 집합금지명령 때문에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집에 있다보니 100kg 가까이 살이 찌고 또 그러다 보니 면접에서 떨어지곤 했다. 이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이라는 달리기 에세이를 읽었는데 이 소설가가 매일 10km를 뛴다는 사실에 자극 받아 첫 날 5km부터 달려봤다. 중랑천에서 매일 그렇게 뛰다가 한 달 지나고 10kg가 빠졌고 점점 거리를 늘려 3달 차에 매일 10km를 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아는 형이 기록이 얼마 나오냐고 묻길래 10km에 48분이라니까 마라톤 뛰어보라고 권유. 그래서 하프 뛰어보고 점점 뛸만 하니까 코로나 이후 재개한다는11월의 손기정 마라톤 대회를 드디어 뛰어보려고 계속 훈련했는데 또 코로나로 취소되었다. 그래서 혼자 뛰어보기로 결심. 잠실 보조경기장 400m트랙을 105.5바퀴를 뛰고 3시간16분을 기록했다. (2021년 11월) 그 다음은 Sub3가 목표가 되었다.(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이내로 들어오는 것) 그러나 6번을 실패하기도 했다.
그 옆에 앉은 E는 조깅맨에 대한 팬덤+살 빼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마라톤 뛸 때마다 “다시는 안 뛴다”고 했다가 마무리 단계, 완주에 가까운 순간에는 또 긍정적인 자세가 살아나 “내가 조금만 더 하면 더 잘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살아난다. 35km지점에서부터 너무 힘들어 핸드폰과 바람막이 재킷을 다 버리고 싶을 정도이다. 7 번째 마라톤에서 4시간24분으로 완주했다. SH와 달리기로 이어진 연인 사이로, 조깅맨 SH의 전설적인 “굴러서 들어온” 장면을 동영상을 보여줬다.
우리 체리암 홍보대사격인 J는 이번 모임을 함께 기획하였다. 강남의 어느 중학교 도서관 사서 선생님인데 2020년에 드디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멋져 보이는 것은 다 하고 싶어 한강변 달리기, 새벽수영, 테니스라는 목표를 세웠다. (수영과 테니스는 안 맞아서 포기했고) 예전에 같은 학교에 근무한 동료였던 권은주 스포츠 강사가 여자 마라톤계의 전설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됨. 이 분이 Run with Judy의 주인공. 이 유명한 분의 지도 하에 여름에 계단을 뛰면서 올라가는 운동도 남산에서 했다.(중간에 풀숲으로 도망가기도 했다.) 하프 마라톤을 하는데 코스에 언덕이 있다는 사실(청와대길 쪽)을 처음 깨닫고 황당했으나 이제는 반포운동장에서 30분씩 뛰는 것으로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 새로 만나는 것에 겁이 많았던 사람인데 자신감도 붙게 되었다.
SY는 은행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인데 산에서도 뛰는 사람. 이 분에게 러너즈 하이를 경험했냐고 물어보니까 러너즈 다이를 경험했다며 농담으로 답했다. 원래 달리기를 극혐하던 사람인데 코로나 때 재택근무환경에 대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업무에 시달리며 주말까지 반납하며 살았을 때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대상포진까지 왔었다. 이 때 맨몸운동부터 시작하며 동네 둘레길 한 바퀴씩 뛰면 역시 달리기는 나에게 안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미라클 모닝’을 알게 되어 사람들과 약속하고 새벽에 2-3km씩 뛰기 시작했다. 이것도 겨우 뛰는데 여자분들이 7-10km씩 뛰고 있었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점점 뛰다보니 성취감을 느끼고 실내에서만 일하던 사람이 비로소 자유로운 느낌을 구체적으로 맛보았다. 그래서 처음 시도한 하프 대회인 보령마라톤에서 12km때부터 다리가 안 움직여져서 포기할 뻔했다. 그런데 완주 후 기분이 너무 좋아 2주 후에 풀코스 뛰기로 마음먹고 혼자 훈련했다.
그런데 나중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함을 깨닫고 running class 러닝BK에 가입했다. 그런데 운동장이 아니라 산으로 모집하는 점이 이상해서 나중에 보니 신청서를 잘못 냈는지 trail class였던 것이고 5명 밖에 없었다. 민폐를 끼치기 싫어 그냥 잠자코 있었다. 2022년부터 정말 열심히 풀코스 준비. 이 당시 30대의 매너리즘에 빠져 지내며 회사에서 인정도 받고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으니 나태해지기도 했는데 뛰면서 다시 치열하게 사는 느낌을 받아 좋았다. 그래서 전쟁 나가듯이 비장하게 준비했다. JTBC 대회 열흘 앞두고 훈련 중에 종아리에 빡!소리가 나고 근육 파열을 겪고 나중에 동아마라톤에서는 정강이에 금이 가기도 했다. 그래도 아픈 몸을 이끌고도 마라톤을 완주했다.(35km지점부터 걸어서 들어옴, 3시간17분의 기록) 준비과정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Run with Judy 합류 후에 산에서 덜 뛰게 되었으나 산에서 뛸 때 너무 행복하다. 최근에는 봉우리를 몇 개나 건너야 하는 장수트레일레이스70K까지 다녀왔다. “내게 마라톤이 전쟁 같다면 트레일은 쉼터이다.”
마지막으로 G는 국제회의 기획자인데 학부때부터 잠을 줄이며 공부하고 직장인이 되어서 야근을 많이 하다보니 호르몬계가 망가지고 너무 살이 쪄서 집 근처 호숫가 걷다가 런데이 앱을 알게 되었다. 1분을 걷고 1분을 뛰었다. 2022년 JTBC 10km 대회에 처음 도전했는데 모두들 같이 뛰는 것 자체가 너무 신났다. 풍선을 달고 뛰는 pacemaker 보면서 달렸다. 서울에서 하는 하프도 도전한 작년 4월말 너무나 더웠다. 19km지점에서 다리에 쥐가 심하게 나 눈을 감고 누워버렸다. 그런데 그 때 기적적으로 누가 나타나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파스를 뿌려주니 천사가 따로 없었다. 이 때부터 나도 이 분처럼 누굴 도와주는 사람이 꼭 되고 싶다라는 꿈이 생겼다고 한다.
이 날의 이야기 하이라이트는 SH이 “굴러서 피니쉬 라인 들어온” 장면을 본 것이었다. 마지막 목표지점이 바로 코앞에 보이는 곳에서 다리가 다 풀려 넘어지고 몸을 다시 일으키려는 노력을 아무리 해도 안되어 정말로 누운 채로 굴렀다는 말이다. 정말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분. 옆의 동료들이 그 날 얼마나 대단했는지 회상하며 다시 찬사를 보내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오늘의 사랑방 이야기 손님들, 몸 성히 뛰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