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전
달걀을 깨뜨리며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두 음절 단어는 캡슐처럼 깨뜨릴 수 있을 것만 같다고. 호빵을 찢으면 앙금이 펼쳐지듯 책장을 가르면 이야기가 쏟아질 것만 같다고. 낙차를 견디지 못한 노른자가 햇빛으로 번지는 아침. 그러나 어떤 이야기는 기어이 실밥을 뜯어야만 나오겠지. 사람과 사람을 미닫이문처럼 잡고 틈을 벌리던 한때로부터, 그 악력으로 애써 봉합해둔 한 사람의 마음을 열어보려던 계절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다. 달라진 게 없구나. 그때 나는 무엇을 다짐했던 걸까. 어떤 연유로 그 다짐을 접은 채 여름 안에 숨어버린 것일까.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경기도는 달걀로 비유된다. 서울은 노른자, 경기도는 흰자. 경기도민으로서 탁월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가도 문득 서러워지곤 한다. 노른자만 좋아하면 살찌는데…… 흰자 위로 번진 노른자를 유화처럼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봤던 전시가 언제였더라. 그때 내 곁에 누가 있었더라. 쿡 찌른 기억은 닿을 곳 없이 흐르다, 벽에 다다른 수영선수가 몸을 회전시키듯 다시 내게로 되돌아온다. 밖을 나서지도 않았는데 벌써 몸이 축축하다.
구두에 발을 구겨 넣다가 엄마가 남긴 문자를 뒤늦게 확인한다. 선풍기 끄고 창문 열고 가. 냉장고에 토마토 갈아둔 거 있으니까 먹고. 거실 한켠에서 나지막이 회전 중인 선풍기가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문자를 읽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엄마에게 반쯤 죽었으려나. 글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금 다지며 냉장고를 연다. 토마토는 토마토라 발음하기엔 너무 묽어진 채로 냉장고의 심장 쪽에 놓여 있다. 언젠가 내 이름을 또렷이 불러주던 또 다른 이름들. 심장의 갈변을 막기 위해 언제나 온도를 맞춰주던 얼굴들. 그 얼굴을 뒤늦게 어루만지듯 컵에 담긴 토마토를 쥐어본다.

출근 중
창가 좌석에 기댄 채 다음 수업에 기틀이 될 도서를 정독한다. 강사로서 지내온 생활도 어느덧 일 년을 넘겼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은 뒤, 그것을 기반으로 아이들에게 배경지식도 심어주고 글도 봐주는 것이 내 업이다. 배경지식에 매몰되는 사이 정작 내게 필요했던 풍경과 지혜를 지나친 건 아닐까 싶어 종종 두려워질 때가 있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겠지.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어 허공을 응시하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몸도 마음도 어지러웠던 어느 날, 한 주의 수업을 모두 끝낸 교실에서 나는 좀처럼 빠져나오질 못했다. 찻잔에 걸쳐둔 티백이 어깨 위 땀수건처럼 느껴지고, 그렇게 기진맥진이라는 단어를 이해하던 중이었다. 하고 싶은 말보다 해야 하는 말을 전하는 것이 나의 일이구나. 찻잎이 되어가는 슬픔이 이런 것이구나. 찻잎이 되려면 필요 이상으로 시들어야 하고, 그것을 우리기 위해 지나치게 뜨거워져야 하는 순리.
나는 결국 사랑을 기다리고 있구나.

퇴근 전
아이들이 모두 떠난 교실. 판서를 지우다가 칠판 구석을 채운 주먹밥 그림을 바라본다. 대부분의 선생님은 별명을 지니고 있는데, 내 경우 주먹밥이 그것이다. 별명은 만화 [쿵야쿵야] 속 ‘주먹밥 쿵야’를 닮은 것 같다는 동료의 말로부터 시작됐다. 주먹밥 쿵야는 요리를 좋아하는 어수룩하고 불쌍한 캐릭터이다. 급격한 노화로 인해 차마 얼굴이 닮았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하여간 주먹밥은 여러모로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기에 용이했다. 어느 정도 둥근 형태만 유지하기, 온기를 품기, 어떤 마음이 들어차든 주먹밥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다행히 아이들도 이 별명을 좋아라 해서, 이따금 간단한 보상을 걸고 주먹밥 공모전을 열곤 한다. 특별할 건 없고, 자신만의 주먹밥을 그린 뒤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이때 아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원형에 가깝게 그리려는 아이들과 자신의 입맛대로 변형하려는 아이들. 무엇이 더 나은 그림인진 모르겠지만, 나 역시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리라 예감해볼 뿐이다. 그러니 내게 다가올 참가자를 조건 없이 환대해 주기. 마음의 칠판을 더 넓혀두기.
퇴근 중
며칠째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다. 냉면 먹고 싶다. 어제도 먹었지만 또 먹고 싶다. 함흥과 평양 사이를 달리고 싶은 밤이다. 중국의 한 남성은 너무 덥다는 이유로 열차의 창문을 부쉈다고 한다. 푹푹 찌는 한여름, 열차의 기능 이상으로 냉방시설까지 작동을 멈춘 것이다. 남성이 얼마간 창문을 깨자 이에 동조된 일부 승객들이 금이 간 창문에 발길질을 했다고 한다. 열차에 구비된 망치는 비상시에만 사용 가능하다. 매일 같은 구간 속에서 흔들리는 내 몸을 량輛으로 헤아릴 수 있다면, 비상의 기준 역시 스스로 정해볼 수 있을까. 그때 냉면은 내 비상식량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아무튼 지금은…… 냉면이 먹고 싶을 뿐이다.

- 글과 사진 윤병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