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좋은 생각 품고
머물다가 
떠나가는 곳

작년말에 팥이 강원도 원주의 그루터기를 방문, 부녀가 전시하는 <부엌전>을 보고난 후 그림작가 김지애를 만났다. 우선 그 따스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루터기라는 장소의 아름다움에 반했다. 전시작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나무를 깎는 아버지 김진성 작가의 정감어린 소반, 쟁반, 그릇, 덮개, 주걱 하나하나가 다 주옥같았다. 또 그 감성 그대로 따님인 보리차룸 김지애 작가가 그린 한없이 사랑스러운 그림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이 그림들은 대체로 작가의 삶에서 어머니께서 해주신 맛난 음식들을 친구들과 나눠먹는 순간처럼 따뜻한 온기를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에너지가 넘치는 분으로 참 유쾌하시고 요리하다가 필요한 목공예품을 남편에게 주문하면 작품이 나온다고 설명하셨다. 이 분의 설명에 또 반해 쟁반, 덮개, 주걱, 새 모빌 등을 한 아름 사왔다.

그림은 김지애(딸), 목공예는 김진성(아버지). 완벽한 조합의 부녀전 <사랑방>.

겨울이 지나고 올해 이른 봄날 체리암에서 만나 지애씨와 담소를 나누며 전시기획을 했고 5월에 전시하기로 마음을 모아 기뻤다. 우리 한옥과 찰떡궁합인 귀여움 한 가득인 목공과 그림 전시. 그런데 하마터면 전시를 못할 뻔도 했다. 아버지께서 사다리에서 넘어진 사고를 당해 열심히 깎고 계셨던 작업의 마무리를 당장 끝내기 힘들다는 소식이었다. 그래도 빨리 회복하셔서 날짜 조정 후 5월말에 기적적으로 세 가족이 원주에서 작품들을 택시에 싣고 오셔서 하루만에 체리암을 이쁘게 단장했다. 그리고 시원하고 정갈하게 깎아놓은 참외 그림을 전시 포스터로 달았다. 아직도 회복 중인 김진성 작가께서 우리 툇마루에 앉아 조용히 쉬며 말없이 우리 작은 마당을 응시하고 계셨다.

우리 체리암과 그루터기는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사랑방인 점이 닮았다고 해서 전시 제목을 ‘사랑방’이라고 정해주셨다. 정말 맞다. 겨울에 팥이 그루터기를 방문했을 때도 수다를 떨고 있으니 어머니께서 떡과 삶은 계란을 건네셨다. 좋은 사료(나물?) 먹고 자유롭게 노니는 닭의 알은 정말 맛의 근본부터 다름을 그날 깨달았다.(평소에 계란을 별로 먹지 않는 팥도 이날 맛본 특별한 계란에 대해 곰에게 자랑을 했을 정도) 지애씨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마을사람들을 자주 초대하고 함께 농작물을 나눠먹고 정을 나누며 사는 모습에 익숙했다고 한다. 이렇게 훌륭한 어린 시절을 보낸 친구라니. 지난 번 목공예전의 주인공 엄세림 작가도 시골 한옥에서 할머니와 지낸 추억으로 나무를 깎았었는데 체리암은 운좋게 이런 정서를 지닌 분들과 조우한다.

전시를 마치고 떠나는 때에 체리지기들이 서울에 없어 배웅을 못해드렸는데 글쎄 체리암에 와보니 너무나 멋진 솟대가 마당 구석에 서있다. 40년 넘게 한결같이 나무를 깎던 분이 정성드레 만든 솟대라서 더욱이 감동의 물결이었다. 지애씨가 전시 잘 마치고 간다며 문자로 “아버지께서 체리암에 오시는 분들의 평안과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만드신 선물”이라고 인사했다. 참으로 황송하다. 아버지 작가께서 체리암에 오신 날 차분히 우리 마당의 한 켠을 응시하고 계셨던 이유가 이제 밝혀졌다. 이렇게 우리는 체리암을 통해 너무나 큰 마음들을 받고있고 사람사는 맛이 나는 일들이 자꾸 생긴다. 공간으로 후원한다는 생각이 발단이 되어 생긴 일들이니 뜻깊다.

솟대는 어렴풋이 마을 어귀의 멋진 장식으로 몇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찾아보니 마을 수호신의 상징이라는 좋은 뜻이 담겨있었네! 강원도 분이 주신 솟대니까 ‘진또베기’라고 강원도 방언으로 불러야겠다. 이제부터 상서로운 기운을 달고 온 세 마리의 물새가 우리를 지켜준다. 더욱이 아빠새로 보이는 물새가 이쁜 물살이를 물고 있는 모양이 풍요의 상징으로 보인다. 풍요로운 풍류를 더욱 더 즐겨보세!

아리따운 딸을 모델로 아버지가 목각한 인형들에 딸이 붓칠했다. 너무나 정겹다.
김지애 작가(보리차룸)와 팥
사진. 방문객 원지혜(우리 전속사진사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