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우연히 녹색연합의 자연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공생>2 퍼포먼스의 참여자를 모집하는 공지를 보게 되었다. 동식물을 소재로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여러 사람들이 광장에서 춤으로 보여주는 자연의 권리의 메시지가 어떻게 실현될 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연산호, 산양, 상괭이, 저어새, 흰수마자
퍼포먼스의 준비과정은 우선 5월 초 화상 회의로 시작되었다. 연출을 맡은 안영준 무용가를 비롯한 녹색연합 활동가들, 그리고 시민 참가자들이 만나서 기획 취지와 집단무의 서사를 공유했다. 생존 위협을 받고 있는 다섯가지 동물, 제주도 연산호, 산양, 상괭이, 저어새, 흰수마자로 팀이 구성되었고 나는 흰수마자팀에 들어갔다.
우선 팀 별 연습은 해당 동물의 움직임과 전체 동선의 흐름을 익히는 시간이었다. 다음엔 2회에 걸쳐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각 동물의 팀장 무용수들과 40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여 전체 연습이 진행되었다. 기본 발걸음에서 시작해서 참가자 전체가 하나의 동선으로 움직이는 장면을 반복하며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산양을 중심에 둔 직사각형의 각 꼭지점에 나머지 동물들이 시계방향으로 돌다가 다섯 줄로 정렬한다. 여기에서 정면을 향해 군무가 시작된다. 다시 측면으로 돌아 앞사람의 옷깃을 잡은 채, 네 박자에 맞춰 나아가는 흐름을 따라서 다섯 동물로 나누어졌던 직선이 하나의 곡선으로 이어진다. 이 선은 소용돌이 모양을 그리면서 내부 중심을 향해 움직인다. 여럿이 동시에 뛰고 걷는 이 전환장면에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는데 마지막까지 유희적인 분위기 속에서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되었다.
퍼포먼스 당일 오전 9시반 모든 참가자들이 광화문 이순신장군 동상 앞 광장에 모였다. 5월 22일, 세계 생물다양성의 날이다. 참가자들은 광장 근처에서 다른 시민과 섞여서 주위를 걷기 시작한다. 일상의 시간 속 인간들이 동물로 변신한다. 발걸음, 군무, 소용돌이를 만들며 움직이던 다섯 가지 동물들에게 인간의 위협이 가해지면서 갈등이 고조된다. 동물들은 밧줄로 표현되는 인간의 공격으로부터 서로를 지키며 인간에 맞선다. 가면을 쓴 참가자들이 광장의 네 가장자리에 서면 무용수들이 출현하여 위협과 저항으로 뒤얽히는 춤의 장면이 펼쳐진다. 광장을 애워싸던 동물이 함께 폭력의 그물을 거두어 내면서 1부가 끝맺어진다. 퍼포먼스의 마지막은 참가자 모두가 광화문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었다. 처음엔 두 발로 가다가 동물로 ‘변신’하여 네 발로 광장으로 되돌아 온다.

공생의길
<공생>2의 갈등 장면에서 암시되었던 것처럼 다섯 가지의 동물 모두 자연을 개조하는 인간의 위협을 받고 있다. 설악산의 케이블카 설치로 인해 고산동물인 산양의 서식지는 분산되고, 취약등급으로 보호 대상인 상괭이와 저어새 또한 인간의 대규모 공사와 해상 교통의 증가로 인해 공생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이다. 제주도 바다의 고수온은 연산호가 집단으로 폐사하는 현상을 야기하기도 했다.
흰수마자는 한국 고유종으로 한강, 금강, 임진강, 낙동강에 분포하는데 모래가 쌓인 강가의 바닥에 살면서 물살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홍수 예방 등의 이유로 행해진 대규모 공사가 야기한 하천의 단절은 흰수마자와 같은 예민한 민물고기의 서식지에 위협적이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흰수마자처럼 헤엄치는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공생으로 가는 길은 멀고 막막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자연의 일부인 인간으로서, 비인간과 함께 걷고 안 쓰던 근육을 계속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다.
- 작가 김지은(글과 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