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책을 쓰고 그림도 잘 그리는 김산하 작가(생명다양성재단의 대표)에게 그가 살아온 궤적이 궁금하다고 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하는 그림 궤적도 함께 남겨주었다. 어린이들도 참가한 이번 행사(2025.4.13)에, 그들에게 어려운 말인 ‘궤적’을 쉽게 보여주기 위해 종이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부터 그렸다. 그리고 작가가 자신이 아기일 때 침대에 누워있다가 중간에 언제 몸을 일으켰는지 모르게 갑자기 우뚝 서있었다는(중간 궤적이 생략된 아기!) 어머니의 말씀을 소개하며 성격이 급한 아기 모습도 귀엽게 그려서 보였다.


어린 시절 스리랑카와 덴마크에서 보냈는데 열대와 북구의 동물을 보고 자랐다. 콜롬보 집 안 화장실에 뱀도 나왔고 까마귀가 부엌의 고기를 훔쳐갔으며 이웃집 원숭이가 정원에 숨어들기도 했다. 코펜하겐 집 정원에 붉은 여우가 어여쁘게 뒤태를 보이며 앉아있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 중 하나가 바로 <Vulpes the Red Fox>. 바로 정원의 그 여우였다. 국제학교를 다니던 이 때 도서관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고 자연사박물관을 가보게 되었다. 아마 어린 시절의 자극으로 자연스레 “동물을 다루는 인간의 문화”에 관심이 갔다. 우리나라는 실망스럽게도 아직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https://nationalmuseum.creatorlink.net/ 참조)


초등학교 5학년 때 귀국하였고 생물 교과서를 열어보니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여러 단면도, 해부도, 실험 관련 내용이 생소했다. 재미가 없었고 나는 바깥으로 나가 곤충채집을 하기도 했지만 어떤 애들이 잠자리를 잡아 잔인하게 머리를 쳐서 날리는 경우, 하지 말라고 말리던 시절이었다. 중학생 때는 서울대공원 동물원 가는 것도 너무 좋아해서 어느 동물이 어느쪽 우리에 있는지 다 외웠다. 그 중에서 곤충관에 있는 물방개는 동생과 함께 훔쳐서 키워보자고 계획도 세우곤 했다. 아이들에게는 동물을 좋아한다는 것이 곧 동물을 직접 키워보고싶다는 것과 연결된다. 특히 어항처럼 폐쇄적인 완성된 세트장 같은 모습을 보기 좋아한다.

작가는 학창시절 쭉 이어온 동물사랑을 바탕으로 대학입시는 동물과 관련된 학과를 찾다보니 동물자원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이 학문은 결국 동물을 어떻게 잘 키워 잡아먹을까를 연구한다라는 점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가 군대를 다녀온 무렵 같은 대학교에 다니던 동생이 최재천 교수님을 만나보라고 권유했다. 최교수님은 마침 대학원 까치팀에 ‘노가다를 할 남자’가 필요하다며 자리를 제안하셨다. 현재 불행히도 환경부에서 유해동물로 지정한 까치(기가막힐 인간중심적인 노릇!)의 둥지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을 하게 되었다. 사다리차를 대고 올라가 둥지에서 임시로 알을 꺼내 무게를 재고 새끼 까치를 관찰하는 일을 맡았다. 그 때 그 둥지를 들여다보니 세상 안온한 공간으로 솜, 깃털, 비닐류로 폭신폭신하게 만든 라운지 느낌이라서 바람소리가 사사삭 날 때면 너무나 이상적인 집으로 보였다. 작가의 어린 시절 읽던 동물책에서 느낀 감수성을 불러일으킨 순간들이다. 어미새가 나를 발견하면 나를 향해 무섭게 돌진하듯이 날아오긴 했으나 다행히 들이받진 않았다.
까치의 먹이 생태계 연구를 하기로 하여 논문을 준비하면서 어느날 까치를 바라보며 “내가 너에 대해 알아야 한대”라고 혼잣말을 한 적이 있다. 동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논문을 써야한다니. 좀 어색하지만 도시에서 어떻게 까치가 자기 영역을 갖는지 관찰하기로 했다. 연구 결과 도시에서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질수록 까치가 지키는 영역이 넓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도로’는 사람이 음식을 흘리기도 하는 공간이므로 까치가 계산하는 건물 너비에는 도로 면적은 해당이 없다. 그런데 새 중에서 까치는 오래 날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도시에서 살기 힘들다.


이 연구를 하면서 점점 도시환경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 무렵 침팬지 연구의 세계적인 대가 제인 구달 박사(Dr. Jane Goodall)와 만나게 되었는데(처음 만난 자리는 체리암 대표인 누나 팥과 함께 했었다) 이 분이 아시아 강연 투어 때 알게 된 일본의 영장류 연구소를 말씀해주셨다. 때마침 최재천 교수님이 영장류 연구를 해보는 것이 어떠나며 이 연구소 인턴자리를 소개해주셨다. 사실 영장류학이 동물행동학의 꽃이다. 어렸을 때 좋아하던 동물은 영장류보다 거북이, 개구리, 치타였는데, 그래도 일본에서 경험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건너갔다. 챔팬지가 숫자로 실험하고 나서 먹는 사과를 자르고 똥을 치워주는 인턴이었다. 하루에 1000엔(그 당시 만 원)으로 버텨야 하는 생활이라 너무 배고파 나중에 침팬지용 사과와 바나나를 훔쳐먹기도 했다. (침팬지 연구소의 장발장 = 김 연구원)

영장류는 유인원과 원숭이로 나뉘는데 유인원에 인간, 긴팔원숭이,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이 속한다. 그러니 사실 긴팔유인원이라고 해야 맞다. 챔팬지는 우리와 아주 가까우니 사람이 감기 걸리면 그 연구소의 침팬지도 콜록거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아줌마 침팬지가 작가 얼굴에 침을 자꾸 뱉어 힘들었다. 아무리 피하려해도 고등사고를 하며 인간 중 서열이 가장 낮은 인턴을 금방 알아보고 가장 무시하며, 침 뱉을 수 있는 거리보다 멀리 피하니까 나중에 입에 물을 한 가득 머금다가 뿜어내는 기획까지 했다. 침팬지는 너무 사람 같아서 뒷모습으로도 외모가 구별된다.
KOICA자원봉사를 하던 시절,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에 입성할 때 감개무량했으나 보고싶은 동물은 다 도망가고 도망가지 않는 동물은 썩 반갑지 않은 모기, 진드기였다. 그래도 긴팔원숭이를 연구해보고자 30대에 다시 인도네시아로 가서 한국 연구자로서 외국의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특이한 사례가 되었다. 엄청나게 자라는 풀을 베면서 정글을 진입하며 매일 땀, 진흙과 피로 범벅이 되었다. 열대의 정글은 가시 식물로 가득한데 긴팔원숭이를 관찰하기 위해, 나무와 나무 사이를 긴 팔을 이용해 거의 날라다니다시피 하는 동물을 따라다녀야 하는 기가막힌 처지였다. 땅에서 달려야 하는 작가에게는 길을 막는 악마의 식물과 같은 라탄에게 화풀이하다가 오히려 더 다치기도 했다. 그래서 이를 피해 장대에 올라 다니는 도구를 상상해본 적도 있다.

1년을 긴팔원숭이를 쫓아다닌 결과 ‘익숙화’의 과정을 거쳤고 그들이 도망을 가지 않기 시작했다. 20대의 인도네시아 청년을 몇 고용해서 함께 정글 다닐 때 보조원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이 정글에는 최상위 포식자 중 black panther(사실은 검정 점으로 뒤덮인 표범)도 있었다. 그러니 이 사실을 알고 숲에 들어갈 때 기분이 너무 다르다. (이 때 그림을 너무 귀엽게 그려줘서 무서움 전달 실패!) 또 멧돼지가 우리 팀이 낸 길로 엄청난 위력과 속도로 마을을 향해 질주하는 것을 목격했다. (무슨 약속/목적이 있었는지?!) 이러한 대형 포식자/초식동물을 보면서 “이게 원래 세상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현재 우리나라 숲은 주인이 떠난 숲이라고 보면 된다. 원래 한반도에 여러 포식자가 존재했다: 호랑이, 표범, 스라소니, 반달가슴곰, 등.

이러한 정글 경험과 동물행태학 연구를 바탕으로 그림 그리는 동생 김한민 작가(최교수님 만나라고 권유한 동생)와 함께 STOP!시리즈를 쓰면서 집필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동물에게 스톱!이라고 외치면 그 행동을 멈추게 하는 마술을 부리는 아이가 주인공인 그림책(스톱! 시리즈 전9권, 비룡소) 연작이 나왔다: https://bir.co.kr/book_series/stop/ 참조.
나중에 ‘제돌이의 마지막 공연’ 특별편(환경부 선정 우수 환경도서)까지 더해 10권이 되었다: https://bir.co.kr/book/71536/ 참조. 편집자와 출판사 사장님과 많은 줄다리기가 있었다. 우리 형제는 힘겹지만 우리만의 고집을 밀고 나갔다.

경험상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동물을 덕후처럼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 특히 남자애들은 사회성을 상실할 정도로 들이파는 스타일이 많다. 그만큼 의외로 동물을 좋아해도 환경에는 관심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그래서 나는 덕후 vs 대사의 개념을 생각해봤다. 제인 구달 박사는 침팬지는 자연이 우리에게 파견한 대사라고 말해왔다.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면 그냥 덕후로 머무르지 않고 그 동물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자가 되자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야생’에 더 투신해야 한다고 느껴 야생의 대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작가가 몸담고 있는 생명다양성재단에서 Rewilding(야생 복원)을 위한 야생신탁 프로그램을 만들어 여러 분들의 참여로 모금하여 파주에 땅을 샀다.(호랑이를 로고에 쓰는 고려대학교나 기아타이거즈에게 기부 가능성 문의하니 거절당했다. 동물의 얼굴을 로고에 쓰는 값을 동물을 위해 좀 내야하지 않나?!) 이 곳은 너구리와 고라니의 발자국이 발견된 곳이다. 그곳 이웃이 앞으로 뭐할지 물어봐서 “그냥 두려고 한다”라고 하니 오마이갓!을 외쳤다. 그가 보기엔 “노는 땅”이겠지만 사실 노는 땅은 없다. 쉽게 말하면 리와일딩이란 인류와 원래 살던 동물이 공존 가능하도록, 인간 때문에 도망간/없어진 개체들을 도로 자기 서식지에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체리암이 궁금한 김산하의 궤적에 대해 김작가는 매우 짬지고 알찬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마지막 그림을 다시 종이비행기로 마무리했다. 인생의 고비에서 체리지기들(누나와 자형)이 도와주며 체리암이 계동집이던 시절에 머물기도 했는데 고마운 마음 담아 체리암 바위 위에 안착한 비행기로 궤적 이야기를 끝맺음하겠다고 했다. 팥과 곰에게도 뭉클한 순간이었다. 고맙습니다, 김작가!
팥.
*강연 전에 어린이 팬들에게 책 사인회가 있었는데 김산하 작가가 직접 각자 원하는 동물을 그려줬다. 그리고 오늘 못 오게된 친구들까지 챙겨주며 그려주는 다정한 김작가!


*매우 진지하게, 조용하게 들었던 초등학교 4-5학년 어린이들께 감사했다. 귀한 새싹들!

*사회학/생태학과 진학 예정인 대학생에게 김산하 박사가 인간과 야생동물간의 갈등관계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사회학 공부가 중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팥은 새로 나온 체리암 엽서를 참가자들께 선물로 전달하며 기뻐했다.


*참가자들과 작두콩차와 인시즌의 비건 사과호박파이를 나눠먹는 훈훈한 오후를 보낸 훌륭한 일요일이었다. 바로 체리암이 추구하는 분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