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체리암이 작년에 싱그러운 물살이팀을 만나 첫 전시를 함께 한 인연을 맺어 뜻깊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체리지기님! 저 또한 아름다운 공간에서 ‘넓적한물살이’ 이름으로 첫 전시를 열 수 있게 되어 큰 행운이었어요.
PaTI 졸업생이라고 들었는데 무슨 전공(몇 기)이시죠?
- 2018년에 PaTI 한배곳 6기로 입학하여 1년을 다니다가, 개인 사정으로 학교를 나오게 되어 아쉬운 마음이 컸는데요. 이후 2022년에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일러스트레이션 과정(PaTI.is)을 수료했습니다.
최근에 2024 창의인재동반사업 지원으로 애니메이션 <물, 살이>에 그림을 그리셨지요. 어떻게 이 작업을 하게 되셨나요?
-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코리아(SeaShepherd Korea)에서 수중정화를 하기 위해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게 된 2022년 여름, 바다에 들어가 처음으로 자유롭게 흐르듯 헤엄치는 물살이를 두 눈으로 마주한 적이 있어요. 몸이 황금빛을 띤 쥐노래미였는데, 저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유유히 사라졌던 그때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어요.
- 그리고 그날 바닷속에서 만난 물살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 포털사이트에 검색했는데, 물살이의 온전한 모습과 삶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물‘고기’로서 소비되고 착취되는 사진들로 가득했어요. 몸이 토막나 회가 된 모습, 수조에 갇혀있는 모습, 낚싯바늘에 꿰어져 고통스럽게 몸을 뒤트는 모습 … 도감을 찾아보아도 그들이 어떻게 바닷속에서 삶을 살아가는지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어느 때가 제철인지, 어느 부위가 맛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만 가득했어요.
- 그때 처음으로 “오롯이 ‘물살이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장인정신으로 임한 것 같은데 애니메이션 작업 처음이시죠? 제일 보람찬 순간과 제일 힘들었던 일들 꼽는다면?
- 어릴 적에 교과서 끄트머리에 플립북처럼 움직이는 이미지를 그리거나, 파티이즈(PaTI.is)를 다니면서 30초도 채 되지 않는 간단한 애니메이션을 수작업으로 만든 적은 있었지만 10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으로 작업을 한 건 처음이었어요. 배운 적이 없었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부딪히면서 만들어 나가야 했는데요. 요령이 없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느라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 점이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요. 물살이 한 명, 한 명의 움직임을 재현해 내느라 그것도 무척 애를 먹었고요.
- 그런데 그만큼 공을 들였기 때문에, 한 장 한 장 그렸던 그림이 제가 의도한 바대로 살아 움직였을 때 가장 보람찼던 것 같습니다. 또한 멘토로서 좋은 질문을 던져주신 박재옥 감독님, 박 감독님의 멘토링을 함께 받으며 여러 팁을 공유해주신 멘티 박다영님, 애니메이션 작업을 도와주신 정창윤 작가님, 권한결 작가님, 김주은 작가님 덕분에 목표했던 분량까지 완성할 수 있었어요.
2024년 9월에 체리암에서 열린 <물살이 – 물고기 아닌 물살이 도감>원화 전시에서 작가님의 애정어린 손길로 탄생한 물살이 원화들 감명깊게 잘 감상했어요. 어떤 시선과 심정으로 그리셨는지 한 말씀 부탁해요.
- 2024년 3월쯤부터 동료활동가 민선과 함께 <물고기 아닌 물살이 도감> 책을 기획할 때, 보편적으로 출판되는 기성 도감의 형태를 전복하고 싶었어요. 해체되고, 박제되고, 전시되어 있는 모습이 아닌, 각각 물살이의 생애에 초점을 두고 생명력이 가득한 모습을 담고자 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였습니다.
작가님의 의도대로 그 생명력이 정말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해요. 가장 사랑하는 물살이와 그 이유는?
- 모든 물살이가 저마다의 이유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서 꼽기가 힘든데요. 이 인터뷰를 하는 시점에서 가장 사랑하고 있는 물살이를 이야기하자면 ‘고등어’예요. 고등어는 <물,살이> 애니메이션을 작업하면서 가장 마음으로 가까워진 물살이인데요.
- 고등어는 몸의 색을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등의 푸른 물결무늬가 물속으로 비치는 태양빛의 어른거림과 비슷하다고 해요. 위협을 느끼면 수면 쪽으로 가깝게 접근해서 어른거리는 빛 패턴에 자신들의 몸을 집어넣어 수면 밖에서는 바닷새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고요. 은백색의 복부는 상어나 다랑어 같은 다른 포식자들에게 잘 발견되지 않을 수 있는 멋진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 끊임없이 움직이며 물을 빨아들여야만 아가미를 통한 호흡이 가능해지는 고등어는, 가수면 상태를 제하면 쉼 없이 돌아다니는데요. 그들이 전속력으로 헤엄칠 때의 속도는 시속 약 20km라고 해요.
- 올해에는 바다를 많이 나갈 작정인데, 생애 한 번쯤은 수조가 아닌 바다에서 자유롭게 생동하는 고등어를 목격하고 싶어요.
고등어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잘 느껴집니다. 올해는 어떤 계획으로 작업활동하시나요?
- 우선 <물,살이> 애니메이션을 올해 안에 완성해서 배급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구요. 두 번째는 18살에 다녔던 디하우스 (D-haus) 그림책학교 선생님의 디렉팅을 바탕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그림책을 만들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넓적한물살이’와 ‘시셰퍼드코리아’ 활동의 연장선으로, 파티이즈에 다닐 무렵 기획했던 <오픈워터>라는 책을 천천히 만들어보려고 하는데요. 수중정화활동을 하는 동료 다이버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이에요. 활동가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인간과 바다가 맺어왔던 관계를 돌아보고 바다가 처한 위기, 그리고 할 수 있는 실천을 글과 그림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시셰퍼드(Sea Sheperd Korea) 해양환경 보호단체의 일원이신데 어떻게 활동하게 되셨나요? 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요?
- 파티(PaTI)에서 동기들과 함께 비거닝(Veganing)이라는 동아리를 만들면서 비건을 본격적으로 지향하기 시작했는데요. 이후 개인의 실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더욱 확장하고 싶은 마음에 여러 환경단체들을 찾아보았어요. 혼자 사회운동 혹은 환경과 관련된 평화시위에 시간과 여유가 될 때마다 참여하다가, SNS 알고리즘 덕분에(?) 시셰퍼드코리아에서 안산 구봉도 해변정화활동에 참여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게시글을 보게 되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시셰퍼드에 대해 알게 되었고, ‘쓰동시(쓰레기와 동물과 시)’ 행사에도 참여하며 온 마음으로 활동할 수 있을 적절한 때를 지켜보다가 2019년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시셰퍼드에서는 해양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직접행동으로 매달 정기적으로 해변/수중정화활동을 하고, 비정기적으로 정부와 시민 대상으로 한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정해진 활동이 있었다기보다는, 필요한 곳에 맞추어 활동했는데요. 주로 SNS 콘텐츠에 필요한 일러스트 작업, 캠페인에 필요한 피켓 등 물품 제작을 주로 하였어요. 작년에는 활동을 쉬었는데요. 올해에는 수중정화와 관련한 활동에 집중해 보려 합니다.
해양쓰레기는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제로웨이스트 많이 고민하고 사는 분이신데 생활의 요령 몇 가지 알려주세요.
- 비건과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한지 4-5년차가 되다 보니, 가방은 물론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은 자연스러워졌고요. 포장하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다회용기를 챙겨요. 만약 들고 오는 것을 깜빡했다면 매장에서 먹거나 다음을 기약하고요. 음식은 비건이든, 논비건이든 상관없이 남기지 않으려 합니다.
- 이미 저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요령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몸소 실천하며 들었던 생각을 하나 나누자면요. 그러니까 비건과 제로웨이스트를 한다는 것은, 당장의 욕구를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편리해지고자 하는 욕구, 먹고 싶은 욕구 … 사실 욕구를 쉴 새 없이 자극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대로 가는 길이기에, 쉽지 않아요. 물살을 따라 흘러가는 건 쉽지만,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건 무척이나 힘이 드는 것처럼요.
- 처음에는 습관을 들이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자책하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더라구요. 완벽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차근차근 시작하다 보면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있는 스스로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당장의 욕구를 내려놓는 연습’ 이 표현이 참으로 와닿네요. 어떻게 비건이 되셨나요?
- 비건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훨씬 오래전이었어요. 13살 적에 TV동물농장에서 중국의 한 모피공장에 대한 이야기를 방영했는데요. 살아있는 너구리를 나무에 매달아 몽둥이로 머리를 가격해 기절시키고, 그 채로 가죽을 벗기는 모습을 봤어요. 그러다 도중에 너구리가 깨어나서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왔고, 그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서 정말 엉엉 소리 내 울었던 기억이 나요.
- 그렇게 인간에 의해 고통을 받는 존재가 비단 너구리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동물권에 대해 찾아보았어요. 그때 동물실험과 공장식 축산업에 대해서도 알게 되면서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에는 채식을 시작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학교에서 늘 동물성이 들어간 반찬이 나왔고, 아빠가 무척이나 고기를 좋아하셨기 때문에 집 반찬에도 고기가 빠지지 않았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유별나다는 시선을 받는 것도 쉽지 않았구요. 결국 얼마 못 가 포기하고 말았는데, 앞서 말씀드렸던 파티(PaTI)에서의 비건 동아리 활동을 계기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현재는 비건인으로 사는 게 불편한 점이 있으세요?
- 비건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무렵보다는 훨씬 좋아진 것 같아요. 비건 식당, 비건 제품 등 일상에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구요. 사람들이 이해하는 폭도 넓어졌다고 생각해요. 물론 대부분 서울 중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 아쉽지만, 점차 확장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 체리암은 채식을 홍보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데 다른 곳에서 소외되는 경험을 하는 비건인이 여기서는 오히려 대우받는 느낌 받았으면 해요. 이와 관련하여 혹시 제안할 어떤 아이디어가 있으세요?
- 여전히 비건은 ‘불편하다’, ‘어렵다’, ‘맛이 없다’라는 인식이 완전하게 깨지지 않은 것 같아요. 비건, 논비건 관계없이 쉽게 관심을 갖고 찾아올 수 있는 다양한 행사와 함께 맛있는 비건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시는 것만으로도 대우받는 느낌과 함께 홍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고요!
- 연대의 자리로서도 좋은 공간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제가 경험했을 때 체리암에서의 일주일은,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는 따스한 공간이었어요. 번뜩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없지만, 지금과 같이 뜨개질/자수/직조 등과 같이 비건을 지향하는 개인 창작자가 여는 워크숍, 혹은 환경과 관련한 단체에 공간을 지원하는 형태만으로도 너무나 큰 힘이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저와 민선이 큰 힘을 받았던 것처럼요!
올해는 어떤 계획을 갖고 활동하시나요?
- 활동가이자,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기반을 다지고 싶어요. 일상을 살아가는 게 벅차다보면 작업도, 활동도 이어나가기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올해에는 비건 레스토랑에서 주 3일 일하면서 활동과 연계된 작업을 이어나가보려 해요.
마지막으로 생태적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시를 한 편 소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봐, 나무들이
스스로
빛의 기둥으로변하며,
계피와
실현의
짙은 향 풍기고 있어,끝이 뾰족한
부들의 긴 가지들
연못의
푸른 어깨 위로솜털 터뜨려 흩날리고,
연못마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이제 이름이 사라지지
해마다
내가 평생
배운모든 것들
불과 상실의 검은 강으로
돌아가지
강 건너편에는우리가
영원히 그 의미를 알지 못할
구원이 있지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세 가지를
할 수 있어야만 하지
유한한 생명을 사랑하기,
자신의 삶이 그것에 달려 있음을
알고 그걸 끌어안기,
그리고 놓아줄 때가 되면
놓아주기<블랙워터 숲에서>, 메리 올리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