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향이 있다. 나에겐 오렌지 향이 그렇다. 감귤류 향은 사람들이 두루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냄새에 관한 한 심리 연구에서 감귤류 향기에 노출된 피실험자들은 단순한 검사에도 능동적인 자세로 좋은 점수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했다고 한다.(애슐리 워드의 <센세이셔널>) 한편, 오렌지 색은 내가 좋아하는 색깔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밝은 태양을 연상시켜 따뜻하고 활기 넘치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오렌지의 원산지는 인도 북부, 말레이반도, 중국 남부이다. 오렌지는 수천 년 전 처음으로 중국인들에 의해 재배되었지만 내가 처음 먹은 오렌지는 미국산으로, 여전히 나는 오렌지 하면 미국 브랜드인 썬키스트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최근 오렌지에 대한 인상이 많이 바뀌었다. 그 시작은 한 팔레스타인 화가의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그 화가는 이스라엘 건국 1년 전인 1947년 팔레스타인 비르제이트에서 태어나 올해 8월 예루살렘에서 영면한 Sliman Mansour(슬리만 만수르)이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삶과 문화, 이스라엘 점령에 대한 투쟁을 화폭에 담아왔다. 그러다 내 눈에 띈 작품은 <오렌지 수확 Orange harvest>였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그림 가운데엔 팔레스타인 전통 의상을 입은 두 여인이 보인다. 위에 서있는 여성은 오렌지가 가득한 바구니를 안고 있고, 아래 앉은 여성은 그 바구니를 머리에 이려는 듯 한쪽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위로 향한 자세이다. 그림 양쪽은 오렌지 나무들, 나무 주변에서 오렌지를 수확하는 사람들로 빽빽하게 채워졌다. 그런데 조금만 자세히 보면 오렌지 나무 풍경은 마치 샤워커튼처럼 표현되어서 두 여인과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 않은 듯 보인다. 이 지점 때문에 <오렌지 수확>은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그려진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그림의 배경은 Jaffa일 것이다. 야파는 고대 지중해 항구 도시로, 현재는 이스라엘의 도시 텔아비브-야포 시의 일부다.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따뜻하고 건조한 여름과 부드러운 겨울)에 속한 야파의 해안평야 지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야파 오렌지를 탄생시켰고, 1930년대에는 감귤류 산업이 팔레스타인 경제 산업의 기반이 될 정도였다.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 시기 발발했던 야파 폭동*이 있던 바로 그 곳으로, 일각에서는 팔레스타인 전쟁의 실제 시작점을 이 사건이라 보기도 한다.
*야파 폭동(1921): 유대인 좌파 단체 간의 충돌을 자신들에 대한 공격으로 오해한 아랍 주민들이 선제공격을 감행,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약 1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비극적인 유혈 사태
팔레스타인 저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Ghassan Kanafani(가산 카나파니)의 단편소설 「슬픈 오렌지의 땅」 (『뜨거운 태양 아래서』 수록)에도 야파가 등장한다. 이 소설을 통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오렌지가 평화롭고 풍요로웠던 조국의 땅을 상징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전쟁이 터지자 가족과 함께 야파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한 소년의 시선으로 전개되며 이야기의 거의 모든 흐름에 오렌지가 등장한다. “길가에 늘어선 오렌지나무들을 하나둘씩” 뒤로 한 채 가족과 피난길에 오른 소년이 소설의 마지막엔 자신의 유년 시절과 작별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는데, 이때 말라 비틀어진 오렌지의 이미지와 무너져 버린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진다.
이제 내게 오렌지향은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게 되었다. 그런데 평화가 그런 것 같다. 평화라고 하면 아무 사건 없이 천하태평해 보이는 풍경이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부당하게 소외당하고 짓밟힌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잘못된 것을 함께 바꾸어 나가는 과정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오렌지향을 맡으며 평화를 바라고 외쳐본다. Free Palestine!
- 참조 및 인용
애슐리 워드, <센세이셔널>, 상상스퀘어(2024)
제시카 J. 리, <흩어짐>, 에트르(2026)
슬리만 만수르 작가 홈페이지
https://www.aljazeera.com/opinions/2021/5/2/why-the-events-in-jaffa-of-may-1-1921-are-important-today
- 글 박지연

- 사진 출처: 슬리만 만수르 작가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p/DPeK19kiLN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