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설임 없이 기다리기
숨과 숨이 모여 숲이 되는 순간을
가만히 귀 기울이기
안녕
으름덩굴이 나무를 감고 올라가 하늘을 열어젖힙니다
환하게 쏟아지는 연자주빛 향기
은사시나무는 가볍게 몸을 떨며 빛을 세공하고
하얀 꽃가루가 천천히 유영합니다
빛의 숨결을 따라
사랑의 꿈을 꿉니다
반듯하고 따뜻한 돌은 작은 발자국들의 식탁
소복이 쌓인 도토리 껍질 위로 배부르게 고이는 햇살
오색딱따구리가 떨어뜨리고 간 깃털은 곧 둥지가 될 것입니다
새 숨이 첫 숨을 틔우며
숲의 언어를 배워갈 것입니다
생강나무 아래 생강나무가 자라는 축복
축복의 퍼즐을 완성한 나무는 그대로 뼈가 되었습니다
숲이 발라낸 뼈에서
버섯이 자라고 절지동물이 알을 낳고 애벌레가 기어다니고
뼈는 다시 숲이 됩니다
여름이면 파란 이끼를 두르기도 하고요
땅은 이제 비명을 지르지 않습니다
삐익 삐익
바람을 남기고 날아가는 밀화부리
안녕
숲이 건넨 인사를 온몸으로 받을 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습니다
자르고 부수고 파헤치지 않고
숨을 주고받으면서요
익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손끝에 흙이 물든 사람은 오늘도
숨의 이름을 하나하나 헤아립니다
망설임 없이 사랑하고
가만히 희망하며
박은지의 <숨과 숲 – 아힘사>
- 그림과 글씨 노혜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