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좋은 생각 품고
머물다가 
떠나가는 곳
*이 시의 3연을 노혜정 작가 글씨로 감상하세요!

그는 내 안에 갇혔다
그리고 슬픔은 그의 안에 갇혔다
그는 예전과 달리 여유가 조금 생겼다, 공원의 좁은 나뭇잎들
아래로 천천히 걷다가 사다리로 올라가
하늘을 뜯어버렸다, 구멍을 막아놓은 판자처럼
빗방울
혹은 별과 검은 빛이 쏟아질 테고
너는 바라볼 것이다,
라고 그는 생각할 테지만

나는 여전히 분주했다, 뜯지 않은 서류가
쌓여 있고 오후의 햇빛은 빛났다
그가 가는 곳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그러므로
무엇인가 흘러나와 먼지투성이
푸른 종이를 적셨지만 내 탓은 아니다
그런 저녁이면 참
이상하기도 하지, 돌계단에 앉은
그의 곁에서 늙은 개가 축축한 밤의 뺨을 햝는 것이다
달이 조각칼로
지나가는 날들과 죽은 나무들의 껍질을 벗긴다
환하게, 문득
은빛 기둥이 드러난다

아 그렇군, 아주 오래전
나는 어둡고 부드러운 세월과 결혼한 적이 있다
자두나무 두그루 사이에 걸린
희미한 기타 소리 같은 얼굴
그 세월이 데려온 슬픔의 의붓자식
모든 청춘이 살해된 뒤에도 살아남을
비명의 공증인, 그는
내 안에 갇혔다

진은영의 <갇힌 사람>_기형도에게

  • 그림과 글씨 노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