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면에 무언갈 붙이는 걸 좋아한다. 가장 만만한 곳이 냉장고이다. 우리집 냉장고 문짝엔 온갖 것들이 붙어있다. 여행갔을 때 사온 기념품, 가족 사진, 남편이 출장가서 보내준 편지 등. 내 책상 앞 벽, 책상 옆 책장벽도 마찬가지다. 책에서 본 문구들, 인상깊었던 이미지들이 그 공간을 차지한다. 개인적으로 벽에 붙이는 것들은 자꾸 보며 익히고 싶거나,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것들을 떼어내는 행위는 내 인생에서 그에 해당하는 챕터가 넘어갔다는 의미이다.
길거리 벽에도 다양한 것들이 붙어있다. 포스터, 그래피티 같은 이미지, 광고물 등의 매체들은 온갖 벽에 붙어 여러 목소리를 낸다. 나는 그것들 전부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특히 대부분의 현수막은 보기 힘들 정도이다. 멋진 것들도 많다. 최근 인상 깊었던 포스터 중 하나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본 것으로, 산 텔모 시장 가는 길의 벽 한켠에 붙어 있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여성 뒤에 하트 모양의 파이가 있고 그 아래는 “CUANDO SEA GRANDE QUIERO SER Betty”라고 쓰여 있다. 난 커서 베티처럼 되고 싶어! 라는 의미이다. 베티는 누구일까? 호기심이 동해 알아보니 베티는 산 텔모 시장에서 40년 넘게 엠파나다* 가게를 운영해 온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 지역이 관광화되면서 임대료가 치솟게 되었고 결국 그녀는 강제 퇴거를 당했다. 해당 포스터는 그러한 상황을 규탄하고 베티와 같은 이들을 지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산 텔모의 이러한 역사는 처음이 아니다.

산 텔모 지역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치시의 남동쪽에 위치하며, 도시의 오래된 지역을 아우르는 제 1구에 속해있다. 식민지 시대의 정취가 남아있는 건물들과 자갈길, 골동품이나 수공예품, 예술품을 파는 벼룩시장, 거리 곳곳의 예술가 등의 매력적인 요소들로 오늘날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원래 이곳은 부유한 귀족들이 주로 살았던 거주지였다. 그러나 19세기에 황열병 대유행의 진원지가 된 이후 귀족들은 북쪽으로 이주했고, 산 텔모는 아프리카와 원주민 혈통을 가진 노동자 계층의 거주지로 대체되었다. 지주들은 더 많은 임차인을 수용하기 위해 오래된 저택들을 개조하여 다세대 주택 Conventillos을 만들었다. 거주 공간은 줄이고 임대료를 높이면서 북부에 사는 지주들은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그와 반대로 임차인들의 삶은 힘들어졌다. 치솟는 물가, 열악한 주거 환경에 참다 못한 결국 임차인들은 1907년에 임대료 파업에 돌입했다. 당시 수천 명이 탄압을 받고 강제 철거를 당했지만 이후 지나친 임대료 상승은 없어졌다고 한다.1

사람이 건강한 환경에서 살면서 존엄성을 지키며 일하고 휴식하는 것은 권리인가, 특권인가. 나는 권리라고 배운 것 같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다른 동식물도 마찬가지이다. 생명은 모두 그럴 권리가 있다. 우리는 모든 생명에 대한 그러한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되고 계속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 그 과정에는 무수한 벽이 존재한다. 한계와 단절의 벽이다. 그 벽을 넘고 부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동참하고 있다. 벽보와 같은 벽의 목소리들은 그 수단 중 하나이다. 벽의 목소리들은 벽의 본래 속성(나누고, 막는)을 열린 발언의 장으로 바꾼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또 그 목소리들은 퍼져나간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부에노스아이레스 길거리에 붙은 베티 포스터를 보고 이렇게 다른 언어로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1 해당 단락 전체 인용 및 참고: Hany Tarek Gumi Yaber Castro(2024), De Barrio a Producto: La Gentrificación en San Telmo y sus Resistencias. https://facetaconsciente.org/wp-content/uploads/2025/03/De-Barrio-a-Producto-La-Gentrificacion-en-San-Telmo-y-sus-Resistencias_compressed.pdf
글과 사진 박지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