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두 수요일밤에 걸쳐 문학평론가 김웅기 선생이 김수영 시 수업을 진행하였다. 김웅기 선생은 체리암 산문 연작 중 <물끄러미 건너가기>의 필자이기도 하다. 팥이 김 선생님께 강연을 의뢰하게 된 인연은 장대성 시인의 체리암 시 낭독회의 진행자로 만난 때부터 이어졌다. 경희대학교에서 <김수영의 변증법적 공간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같은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2회에 걸친 강연의 큰 제목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은 제안으로 정해졌다.

김수영 강연에 대해서 어제 오늘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김수영 시인을 지금 향유하고 사유한다는 건 그만큼 김수영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형상화된 시가 우리의 지금 생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좋은 고전이기 때문이라는 점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오늘 수영하기>라는 제목을 생각해봤습니다. 물속에서 수영을 하는 것과 김수영의 이름이 중의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김수영의 시를 읽으면서 함께 우리의 생활에서 체력을 기른다는 관점에서 시간을 마련해보고 싶습니다!
김웅기의 2025년 4월초 이메일
네, 그럽시다. 좋은 시를 읽으며 함께 체력을 기릅시다. 역시 문인과 행사/강연을 기획하면 이런 깔끔한 제목이 툭 나와주니 재밌는데다가 멋진 의미를 담았기에 한결 흐뭇하다. 팥이 체리암에서 시 속에 파묻혀 부유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해준 셈이다.


<오늘 수영하기 1> 강연의 제목은 “금이 간 너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김수영, <사랑> (1961)
1회 강연의 제목은 <사랑> 시의 맨 마지막 행에서 따온 것이다. 시시각각 바뀌는 사랑의 다면적인, 불안할 수 있는 얼굴을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체리암에서 기획한 첫 [ㅊㄹㅇ시선 강연]인데 차분한 말씨의 김웅기 평론가가 김수영이 살던 시대상,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니 북촌에 앉아 봄밤에 듣기 퍽 어울렸다. 그 당시 문인들이 명동으로 모여들어 동인(박인환, 김경진, 임호권, 양병식, 김수영이 함께 한 신시론)도 결성하고 커피, 술, 해장국을 같이 들이켰다고 한다. (김수영의 어머니가 유명옥이라는 빈대떡집을 충무로 쪽에서 운영했는데 여기서 자주 곰탕을 먹었다고.)
*유명옥 자리는 현재 허름한 인쇄집 https://m.blog.naver.com/jslimroh/221526418953

이번 5월 강연은 참여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수영에 대해, 그의 모더니스트로서, 리버럴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들여다 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1950년대 전후 이념적 갈등이 고조된 때, 모더니즘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김수영은 여기서 살짝 빗겨나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모더니티를 추구했다고 한다. “일종의 존재론으로서 모더니티를 시에 이끌어왔다.” 시선을 자기 안으로 향하고, 자기반성적이며 놓치고 있는 것에 대한 자각을 하며 응시하는 시인이었다. 모더니티의 의미는 같지만 남들과 방법이 달랐다고. “김수영이 가진 설움과 긍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만날 수 없는 한 몸이라는 역설을 지닌다. 그 양면성의 교량 역할이 사랑이자 자유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면 과언일까.” (강연 유인물에서)
김수영 문학관의 홈페이지에서 시인을 설명하는 글을 가져와 소개했다.
http://kimsuyoung.dobong.go.kr 이 중 가장 인상깊은 내용 몇 마디 옮겨 적으면
- 김수영의 시에서 한국 현대시 사상 처음으로 시적인 말과 일상적인 말의 차별이 사라졌다.
-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환경에서 살아나온 그에게 서울은 서러운 곳이었다. 물질적 궁핍과 문화적 후진성, 독재정치와 분단 현실 그리고 서양 문물의 파도는 김수영에게 깊은 번민을 주었으나 그는 꿈과 감정을 다루는 예술가로서의 자세를 조금도 흩뜨리지 않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충격을 줄 수 있는 진정한 시, 자유로운 시를 쓰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 1959년 출간된 시집 <달나라의 장난>은 김수영 생전에 출판된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으로 이 시기의 시들은 바로 살고자 하는 의지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현실 사이의 갈등과 슬픔의 극복이 중심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다.
- 4·19혁명 이후 김수영의 시는 현실에 대한 자기주장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자유와 사랑)


사랑을 주제로 함께 감상한 시: <아버지의 사진>과 <나의 가족>에서 자기 위안으로 바라본 사랑을 읽었고 <애정지둔>에서 <사랑의 변주곡>까지 차오르는 설움과 사랑이라는 밑천에 흠뻑 젖어보았다. 마지막으로 <사랑>을 읽었다. (김웅기 선생님의 강의안에서)
사랑의 테마로 바라본다면 김수영과 김현경의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https://brunch.co.kr/@malgmi73/621
둘의 관계가 애처롭다. 그의 시의 세계에 지대하게 공헌한 부인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그 당시 초엘리트였던 분이다. 많은 경우 김수영의 원고는 김여사의 필체로 쓴 필사본으로 보존된 이유는 김수영이 흔히 봉투 같은 종이에 끄적이며 적은 다음 부인에게 읽고 평해달라 하고 다시 깨끗이 적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첫 독자였을 것이다. 5월21일 수업에서 이 분에 대한 얘기를 꽤 길게 듣게 되었는데 나중에 보니 바로 다음 날 별세하셨다는 놀라운 소식. 오랜 세월 동안 남편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알리려 노력한 분이다. 향년 98세로 돌아가셨는데 그 시점이 우연이지만 의미심장하다, 우리에겐.
조용한 시절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사랑이 생기었다
굵다란 사랑
누가 있어 나를 본다면은
이것이 확실히 우스운 이야깃거리다
다리 밑에 물이 흐르고
나의 시절은 좁다
사랑은 고독이라고 내가 나에게 재긍정하는 것이
또한 우스운 일일 것이다조용한 시절 대신 나의 백골이 생기었다
생활의 백골
누가 있어 나를 본다면은
이것은 확실히 무서운 이야깃거리다
다리 밑에 물이 마르고
나의 몸도 없어지고
나의 그림자도 달아난다
나는 나에게 대답할 것이 없어져도 쓸쓸하지 않았다생활무한
고난돌기
백골의복
삼복염천거래
나의 시절은 태양 속에
나의 사랑도 태양 속에 일식하고
첩첩이 무서운 주야
애정은 나뭇잎처럼 기어코 떨어졌으면서
나의 손 위에서 신음한다
가야만 하는 사람의 이별을 기다리는 것처럼
생활은 열도를 측량할 수 없고
나의 노래는 물방울처럼 땅속으로 향하여 들어갈 것
애정지둔김수영, <애정지둔> (1954)
제목 애정지둔은 사랑이 느리고 더디게 온다는 뜻이다. 아마도 계속된 생활고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사실 더디게 온다는 뜻은 곧 살면서 힘든 일들로 인해 사랑이 뿌옇게 가려져있을 때가 많았다는 말이 아닐까. 무겁게 깔려있는 안개처럼, 앞에 있는데 서서히 다가온다. (팥의 옛 삶의 경험으로는 그렇게 느껴진다.)
고난돌기. 어려운 삶 속에서 고난은 갑자기 닥치고. 김웅기 선생님의 설명은 백골은 고단함의 연속을 말하는데 생계가 어렵지만 삶을 긍정하며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단단한 뼈의 의지이기도 하고 ‘생활’로 자신의 이상과 현실 간의 거리를 가늠해본다는 것.


김수영의 고난을 얘기하며 우린 고급 떡을 먹고 있으니 조금 미안하지만 마치 제사를 올리듯이 그 분의 유산을 기리며 체리암에 자주 초대하는 주제로 삼기로 했다.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 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3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김수영, <사랑의 변주곡>(1967), 첫 연 발췌


한겨레에 의하면 2024년에 현역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로 꼽혔다는 <사랑의 변주곡>을 여러 글을 참조하며 뜯어보고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18회나 나온다. 혁명의 시대에 사랑이란?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19281.html
https://brunch.co.kr/@lkjwin/250
https://m.blog.naver.com/olpheus/221362326981
*재갈거리다 = 나직한 소리로 조금 떠들썩하게 자꾸 이야기하다
*이 시의 싯구 배치의 형식에 대해 질문을 했더니 선생님은 김수영이 60년대에 시에 산문성을 도입하려 했기 때문에 시가 시로서 잘 안 읽히도록 실험했다고 설명한다. 역시, 일부러 쪼개어 놓아 입은 머뭇거리게 되고 눈이 따라가다 긴장하게 만든다.
선생님께 오늘 가져오신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가 어떤 시냐고 물으니 <나의 가족>의 마지막 행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
정말 어찌 이렇게 기가막히게 자기만의 빛을 모을 줄 아는 도자기를 빚는 것처럼 문장이 나오는지. 감탄스러운 김수영.
차라리 위대한 것을 바라지 말았으면
유순한 가족들이 모여서
죄 없는 말 주고받는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방 안에서
나의 위대한 소재(所在)를 생각하고
더듬어보고 짚어보지 않았으면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 집안의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이것이 사랑이냐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김수영, <나의 가족> (1954), 마지막 두 연 발췌

그 다음 주 수요일 밤 <오늘 수영하기2> 강연의 제목은 ‘형식은 언제나 자유를, 내용은 언제나 부자유를’

아마도 김수영의 시와 산문이 엄청난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 세련미와 비장미의 균형이 대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형식이 매우 자유로운 실험으로 가득해 현대 독자가 흥미를 잃게되는 일이 없고 그 내용은 괴로운 시대상이 직설적으로 반영되어있어, 얼마나 그가 자유를 갈구했는지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4·19혁명 직후에 자유주의자 시인이 쓴 <김일성만세>의 알레고리를 살펴본 후, 언론의 자유가 없어진 암울한 시절로 돌입한 후 자꾸만 실패하는 자유는 <X에서 Y로>, <시>, <절망>에서 관찰했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웃음>을 왜 짓게 되는지 감상했다. 자유에 대한 대목을 찾는 수업은 아니고 시를 쓰는 행위 자체를 통한 자유의 추구가 무엇인지, 어떤 모양인지 함께 느껴보았다.



해방 이후 문학계는 민중의 민족문화에 집중한다. 이런 맥락 속에서 김수영이 1920년대 후반에 영화배우로 활동한 시인이자 비평가인 임화를 동경했다고 한다. 50년대 전후 그 당시 대부분의 문인들이 임화의 <조선신문학사>를 읽었는데(조선만의 문학사 정립하려는 노력) 역시 김수영도 그랬다. 임화는 사회주의 인문학 단체인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연맹(KAPF)의 주요인물로서 인민해방을 꿈꿨다.
임화에 대해 https://brunch.co.kr/@khcheong/647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김수영, <절망>
선생님은 여기서 ‘절망’을 ‘의지’로 바꿔읽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팥은 ‘반성하지 않는’은 무엇으로 바꿔읽어볼 수 있겠냐고 물으니 선생님이 몇 초 생각해보다가 ‘의심’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김수영의 시대상 대신 지금의 기후위기 상황을 대입해봐도 너무나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절망은 절망인데 예기치 않게 구원의 바람이 올 수도 있나 싶다. (물론 팥은 지구가 처한 상황에 대해 매우 비관론자이다. 너무 이기적이라 제대로 된 반성이 없는 인류 때문이지.)
*정말 오랜만에 입시준비 기분으로 볼 해설 https://cafe.daum.net/kyj-academy/3VZv/171?svc=cafeapi


이번에도 역시 떡과 막걸리를 준비했다.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즐기는 5월의 건강떡.
<우리들의 웃음>이라는 시는 특히 읽을 때마다 다르게 해석된다고 했다. 이 시에서 복수형으로 쓰인 우리들, 아이들에 대해 공동체 의식의 강조라고 설명했다. 시에서 “나의 아들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이를 보고 실제 아들이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하다. 어디 읽어보니 공부를 싫어하는 큰아들 때문에 속 꽤나 썩었던 것 같던데. 이 시에서 아이들이 희망이자 종교라고 본다고 했다. 이 시에서 “우리나라가 종교국이라는 것에 대한 자신을 갖는다”라는 행이 두 번 반복된다. 지금 한국 상황은 이런 면에서 완전히 실패라고 여겨지는데… 저출산 문제도 그렇지만 팥의 나이 또래인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 부모들이 너무나 단시안적으로 아이들을 길러놓아 자기중심적인 존재들이 많이 배출되어 희망이 잘 안보일 때가 많다. 다행히 체리지기들이 만나는 젊은 시인들은 가뭄의 콩같은 존재들이다.
강연의 끝은 김수영의 산문 <제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의 소개였다. “나는 이 제목을, 제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로 바꾸어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고 김수영이 그 당시 시단을 비판한다. 김수영의 비판의식이 참 귀하다. 팥이 제일 싫어하는 태도가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식의 모든 걸 부드럽게 넘기려는 것. 그러니 김수영을 좋아할 수 밖에. 그리고 그 당시 비평가 이어령과 김수영이 문화인의 태도에 대해 주고받은 논쟁 기록이 매우 흥미롭다고 했다. (“서랍 속에 든 불온시”) 이 주제는 정말 따로 수업을 열어야겠군!
https://blog.naver.com/rih1268/221154478698
https://brunch.co.kr/@dajak97/277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996339.html


이번 강연에 들고오려다 두고 온 시가 있냐고 선생님께 물어보니<현대식 교량>,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 그리고 <풀> 중에 고민했다고. 나중에 셋 다 읽어보니 김수영은 시에 대한 뇌의 주름이 엄청 조밀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났다. 특히 옛날부터 교과서에서 접해 친숙한 <풀>은 김수영이 교통사고로 세상 떠나기 20일 전에 썼다는 사실을 알게되니 더욱 먹먹하다. 이번에 우리 국민이 계엄 이후 보여준 모습이기도 하니 시의성이 대단하다!
김유섭 시인의 해석 https://brunch.co.kr/@a94fb43cdf654cb/21
김수영의 어느 11월 30일 일기의 부분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문화거실 체리암을 열고자 할 때 팥이 마음먹은 내용과 흡사해서 이 일기를 접한 순간 흠뻑 놀랐다. 내 인생의 등대같은 글귀이다. 내게 종교는 따로 필요없다.
결론은 적극적인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설움과 고뇌와 노여움과 증오를 넘어서 적극적인 정신을 가짐으로 (차라리 획득함으로) 봉사가 가능하고, 창조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 전체가 봉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에서 비로소 생활이 발견되고 사랑이 완성된다.
비록 초 끝에 묻어 나오는 그을음같이 연약한 것일지라도 이것을 잡는 자만이 천국을 바라볼 수 있는 것같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마음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비치는 것이다.김수영 디 에센셜, 민음사, p.417

